수 불 언 (壽不言)
어느 직업이고 윤리강령이 있게 마련인데 운명상담을 하는 사람에게는 수불언(壽不言)이 첫 번째라고 배웠다. 손님이 수명에 대해서 묻더라도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람 목숨은 하늘이 관장하는 것이므로 인간이 알 수도 없을뿐더러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게 여간 불손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명리를 공부하다 보면 장수할 팔자가 어떤 유형인지 요절 또는 단명할 팔자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게 되겠지만, 사람의 목숨이 언제 끝나지를 정확히 추산하기란 매우 어렵다.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아닌 말로 지금이라도 하늘에서 부르면 당장 돌아가야 할 입장이 아닌가.
건강은 사람에게 달려있고 수명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한다. 아무리 명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도 하늘의 영역을 침범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시쳇말로 세종대왕 몇 장에 또는 프랭클린 몇 장 받고 하늘의 노여움을 살 수는 없다.
필자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오행의 생극제화(生剋制化)의 법칙으로 타고난 수명을 밝히려는 노력을 그만두지는 않겠지만 손님들에게 말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다. 생각해 보시라. 자신의 죽음이 언제인가를 안다면 세상 살 맛이 나시겠냐고. 아마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음의 공포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을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말하지 않는 것이다.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이다. 자신이 돌아갈 날을 알고도 의연하게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신인(神人)이다. 사람을 초월해서 신(神)으로 향하고 있다는 말이다.
몇 년 전에 육십 대 초반의 부인이 남편의 수명을 물으셔서 모른다고 대답하였더니, “다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 하면서 재차 물어왔다. 정말 모른다고 대답하였더니 부인의 말씀인즉. “남편이 의사이니까 내 생각에 아흔 살은 살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의사라는 직업하고 수명은 아무 상관이 없고 댁의 남편이 얼마나 살지는 내 능력 밖이라고 정색을 하고 말했더니, 사주보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냐고 하면서 복채를 못 내겠다고 한 적이 있다.
설상가상으로 한 술 더 뜨는 경우도 있다. 두 달 전에 세상을 하직한 모친이 너무 그리워서 눈물로 하루를 보낸다고 하면서 효성이 지극한 따님이 전화를 주셨다. 모친은 94세에 돌아가셨고 따님의 나이도 환갑을 넘었다. 시집도 안 가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자기 탓에 모친이 타고난 수명을 다 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통곡을 한다. 무슨 말씀이냐고 물었더니 사정이 이러하였다.
어머니 장례를 치른 후에 동생 집에 무슨 도사가 찾아 왔다. 모친의 영정 사진을 보고 하는 말씀이, “돌아가신 양반의 본래 수명이 아흔 여덟인데 너무 일찍 돌아가셨소. 나를 만났으면 더 사셨을텐데...”
사람의 사진을 보고 수명을 알아내는 신통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타고난 수(壽)를 누릴 수 있게 해준다는 대목에 가서는 아연실색이다. 혹세무민의 전형이다. 그 도사는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가.
김동윤 역학 전문가
.부산출생
.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미주세계일보><워싱턴중앙일보>
.<뉴욕중앙일보>에 '김동윤의 역학' 고정칼럼 연재
.도서출판 윤성 대표
.현재 운수 좋은 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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