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불거 (三不去)
40대 후반의 남자가 한 잔 걸치고 필자를 찾아왔다. 속이 상해서 맨 정신으로는 살 수 없다면서 무슨 놈의 팔자가 이 모양인지 봐 달라고 한다. 술 먹은 사람과는 상담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눈빛이 살아있고 취한 정도는 아니라서 그냥 상담에 응했다.
사주를 뽑아보니 재주가 많고 재물도 있을 팔자이지만 애석하게도 운이 뒤집혀서 되는 일이 없는 형국이다. 운로를 살펴보니 앞으로 육,칠년은 더 있어야 운이 풀린다. 보이는 대로 말했더니 무슨 방법이 없냐고 묻는다. “글쎄요, 시간이 흘러서 운이 도래하기 전에는 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손님이 주저주저 하더니 결국 털어놓는 말이 내 귀를 의심케 한다.
“ 이 동네 누구한테 갔더니 제 아내 팔자에 문제가 많다면서 마누라하고 헤어지면 제가 성공할거라고 하던데요. 두 군데서나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이게 무슨 망발이냐.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이다. 내가 출세하자고 자식 낳고 사는 마누라를 버리라니. 정말 나쁜 말이다.
이 양반이 사주에 상관이 발달해서 말로 복을 까먹는 팔자임을 내가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이런 소리를 함부로 하다니 다시는 상종 못할 사람이다. 그리고 이 동네 누구라면 경력이 제법 된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상담을 하다보면 별 소리가 다 나올 수 있지만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인륜을 거스르는 말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이런 사람들은 무간지옥에 간다고 부처가 말하였다. 멀쩡한 집안을 갈라놓고도 무사할는지 내가 꼭 지켜보리라.
필자가 흥분이 돼서 부인의 사주를 뽑아보니 웬걸 남편 출세시키는 팔자가 아닌가. 몸이 워낙 약해서 돈을 벌어올 처지는 아니지만, 고지식한 성격에 자식과 남편을 위해서 사는 전통적인 여인상이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착한 여자를 버리면 천벌을 받는다고 단단히 일러 주었다.
두 사람 모두 후복(後福)이 있으니 자식도 성공하고 말년에 풍족한 생활을 누릴 것이니 내 말을 믿으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설령 마누라를 버려서 부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가치가 있겠으며, 아이들한테는 뭐라고 변명을 하겠는가 말이다.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시대에 칠거지악(七去之惡)이 있었다.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 잘못을 말한다. 시부모에 순종하지 않으면 내쫓고, 아들을 못 낳으면 내쫓고, 음탕하면 내쫓고, 질투하면 내쫓고, 나쁜 병이 있으면 내쫓고, 말이 많으면 내쫓고, 도둑질을 하면 내쫓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잘못이 있더라도 다음 사항에 해당하면 아내를 내치지 못하였으니 이를 삼불거(三不去)라고 한다.
삼불거란 첫째, 부모의 상(喪)을 함께 치룬 경우 둘째, 시집올 때 가난하였으나 함께 고생하여 부자가 된 경우(조강지처) 셋째, 내쫓아도 갈 곳이 없는 경우에는 칠거지악을 범하였더라도 내쫓지 못하게 법으로 제정한 것을 말한다. 여자의 지위가 열악하였던 조선시대에도 아내를 보호하는 규정이 있었음에 주목하기 바란다.
.부산출생
.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미주세계일보><워싱턴중앙일보>
<뉴욕중앙일보>에 '김동윤의 역학' 고정칼럼 연재
.도서출판 윤성 대표
.현재 운수 좋은 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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