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풍 (殺風)
얼굴색이 시커먼 중년 부인이 찾아왔다. 무슨 힘든 사정이 있나 보다 하면서 점괘를 풀어보니 웬걸 재물이 몸에 붙어있고 상승하는 기운이 대단하다. 뭘 하시냐고 물었더니 음식 장사를 한단다. 돈 잘 벌고 계시는데 웬 일 이시냐고 하였더니, 장사가 잘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찜찜해서 물어보러 왔다고 한다.
남편은 신경을 쓰지도 않지만 정작 본인은 노심초사를 했다고 하면서 가게 터가 심상치 않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한다. 주소가 어디냐고 물으니 필자가 잘 아는 동네이다. 자이안트 수퍼가 있는 쇼핑몰인데 전에 뷔페식당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박사장이 하던 가게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참, 정말로 좁은 세상이다. 필자가 2년 전에 박사장한테 인수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리던 가게가 아닌가.
가게 자리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맞혀 볼까요 하였더니 가만히 나를 쳐다본다. 종이에 ‘바람’이라고 적었더니 깜짝 놀란다. 무슨 바람인줄 아시냐고 물으니 대답이 없다. “그게 바로 살풍(殺風)이예요. 칼바람이란 말입니다.”
산이 험하고 높으면 계곡에 살풍이 분다. 그리고 사고가 많이 생긴다. 그런데 문제의 가게는 평지에 있는데도 사시사철 칼바람이 불어댄다. 그냥 바람이 아니다. 흉기라고 보시면 틀림없다. 주위에 고층빌딩이라도 있어서 바람을 막아주면 좋으련만 가게 앞에는 널따랗게 주차장이 펼쳐있다. 따라서 생기가 있을 리 만무하고 장사가 안 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작년 겨울에 이 식당을 인수해서 반년은 지독한 고생을 하였다. 들어오는 족족 망해서 나가는 자리라고 사람들이 수군거려도 눈치를 채지 못했는데 실내에 있는 화분이 모두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는 뭔가 있구나 느꼈다. 매일 밤마다 손님끼리 치고받는 싸움을 해대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귀신 때문에 그렇다고 하였다.
아주머니가 면밀히 살펴보니 바깥에서 쉴 새 없이 들어오는 바람이 주범이었다. 바람 때문에 실내 분위기가 온화하지 못하고 스산한 까닭에 손님들이 편안하게 식사하지도 못하고 시비만 자꾸 발생하는 것이다.
바람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우선 출입문의 크기를 줄이고 이중문을 또 설치하였다. 길게 늘어선 복도에 이동식 칸막이를 세웠다.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막으려고 최대한 노력하였다. 한 달 지나니까 실내에 온기가 생기면서 화분이 살아났다.
이때부터 손님이 밀려오고 가게가 바빠졌다. 허구헌날 벌어지던 싸움도 없어졌다. 그렇지만 가게 앞에 부는 바람은 여전하다. 그래서 아직도 걱정이 태산이라면서 무슨 방법이 없겠냐고 필자를 바라본다.
지형적으로 생긴 바람을 없앨 수는 없다. 욕심 같아서는 주차장 주위에 방풍막을 높게 설치하면 좋겠지만 내 건물도 아닌데다 비용도 문제이다. 그만하면 잘 하신 셈이다.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바람과 싸워서 그만한 성과를 냈으니 아무리 칭찬해도 과하지 않다.
그동안의 노고가 말해주듯 주인 여자의 얼굴이 형편없다. 온 몸 안 아픈 곳이 없을 것이다. 할 만큼 하셨으니 이제는 가게를 내놓는 게 상책이다. 운이 들어왔으니 가격도 잘 받을 것이다. 건강을 회복한 후에 새로운 가게를 해도 실컷 한다. 오랜만의 기분 좋은 상담이다.
.부산출생
.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미주세계일보><워싱턴중앙일보>
<뉴욕중앙일보>에 '김동윤의 역학' 고정칼럼 연재
.도서출판 윤성 대표
.현재 운수 좋은 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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