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를 급히 찾는 전화를 받았다. 지난 봄에 손자 이름을 지어가신 손님이다. 다짜고짜 생년월일을 부르면서 사주가 어떻냐고 묻는다. 우물에서 숭늉 달라는 격이다. 궁금은 한데 급한 성질을 참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자초지종을 들으니 다음과 같은 사연이다.
얼마 전에 한 여자를 만났다. 관상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한 탓에 여자를 보고 턱하니 과부팔자라고 한마디 하였다. 실제로 십 년 전에 남편을 잃었다고 한다. 맞힌 것은 신통하지만 이 여자가 자꾸 접근해 오니까 싫지는 않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되어서 생각다 못해 필자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여자의 사주를 세워보니 남편 자리가 깨진 영락없는 과부팔자이다. 시쳇말로 서방 잡아먹는 여자인데 온갖 풍상을 다 겪는 불쌍한 운명이다. 한 군데 정착을 못하고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녔겠고, 운도 뒤집어 졌으니 고생은 말도 못했겠지만, 오십 넘어서 조금 안정이 되는 형국이다.
반면에 남자는 일단은 재물이 있고 운이 좋은 팔자이다. 하지만 마누라 자리가 깨졌으니 돈 벌고 나서 마나님을 잃었다. 한마디로 홀아비 팔자이다. 본인 왈, 젊어서부터 돈하고 여자는 아쉬운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재혼을 않고 있으니 다시 말해 골키퍼가 비어 있으니 돈이 자꾸만 새게 마련이다. 누구라도 앉혀 놓아야 재물이 쌓인다고 말을 하니까 그때서야 이해가 간다는 눈치이다.
그러나 과부팔자를 들여 놓자니 아무래도 마음이 불안하다. 당연한 조심이다. 여자 잘못 들여서 망한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궁합이 오묘하다. 싫은 소리를 내면서도 안으로는 합을 이룬다. 쉽게 헤어질 사이는 아니다. 합칠 인연이 있다는 말이다.
물론 웬만한 남자라면 엄두도 못 낼 자리이다. 그만치 여자팔자가 세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번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우선, 남자의 사주가 강하다보니 능히 감당을 할만하다. 게다가 한 쪽은 과부팔자이고 다른 쪽은 홀아비 팔자가 아닌가. 누가 누구룰 흉볼 처지가 아니다. 오십 보 백 보이고. 창과 방패의 대결이다. 단지 남자는 운이 좋아서 돈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여자가 굽히고 있는 것이다.
만일 과부와 홀아비가 함께 산다면 어떻게 될까. 보통은 남자가 못 버틴다. 힘으로야 남자가 이기겠지만, 사주팔자를 당할 장사는 없는 법이다. 문제는 궁합이다. 궁합이 좋으면 두 사람의 흠이 상쇄되어 오히려 더 낫지 않을까 싶다. 가여운 인생 하나 구제해 준다고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으련만 결정권을 쥐고 있는 남자는 반신반의 하고 있으니 보는 사람이 다 답답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때는 하늘에 여쭤볼 수밖에 없다. 정성을 다해서 괘를 뽑으니 이를 우짤꼬. 남자의 마음이 변한다.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남자는 싫증을 내고 여자를 떠난다는 점괘가 나온다. 아하, 그렇구나. 여자팔자가 워낙에 얄궂다보니 늘그막에 호강 한번 해보려는 희망은 물거품으로 끝난다는 말이다.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게 팔자임을 새삼 깨달으면서 상담을 마무리한다. (김동윤의 역학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