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상담을 야구경기에 비유하고 싶다. 필자의 경우 한국에서 활동할 때는 주로 단타위주의 타법으로 안타를 많이 생산하였지만, 처음 미국에 와서는 경기장이 큰 탓인지 아니면 심리적으로 위축되어서인지 자꾸만 장타를 노렸다. 자연 방망이를 길게 잡고 어깨에 힘을 잔뜩 주게 된다. 결과는 헛손질이다.
여간해서 안 먹던 스트라이크 아웃을 만리타국에서 당하고는 며칠씩 잠을 설치곤 하였다. 나이 먹고 이민을 왔으니 어서 정착하고 싶은 마음에 큰 스윙을 하였는데 역시 공을 맞추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다. 가끔 홈런을 치기도 하였지만 삼진의 후유증은 가슴속에 응어리져서 오래 간다. 그 중의 하나를 소개한다.
오년 전 늦가을, 버지니아의 애난데일에서 사무실을 운영할 때의 일이다. 생선가게를 하시는 여자 분이 상담을 왔다. 전날 예약을 하면서 가게매각을 의논하고 싶다고 하셨기 때문에 나는 별 생각 없이 가게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사십대 초반의 젊은 부부가 함께 가게를 꾸리고 있는데 장사도 신통치 않지만 도저히 힘이 들어서 못하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루속히 가게를 처분하고 싶은데 언제 팔리겠냐고 또 얼마나 받겠냐고 묻는다. 손님이 특정문제를 꺼내 놓으면 상담하는 입장에서는 편하다. 직구가 한 가운데로 들어오는데 웬만하면 쳐낸다.
필자는 대개 생년월일을 물어 고객의 사주가 어떠한지를 살핀 연후에 신수점(身數占)을 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주를 세우고 점괘를 뽑았다. 일분 안에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점괘에는 여자 손님의 남편자리에 공망살(空亡殺)이 붙어 있었다. 공망이란 비어있고 없어진다는 뜻으로서 허실,피상,멸실 등의 작용을 한다. 평소 같으면 분명히 짚고 넘어 갔을 텐데 그날은 뭐에 홀렸는지 서둘러 가게매각에만 포커스를 맞추었다.
그리고 열흘정도 시간이 흘렀다. 전화가 걸려왔다. 생선가게를 하시는 여자였다. 웬일인가 싶었다.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며칠 전에 남편 장례를 치르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필자에게 따지고 싶었단다. 남편한테 변고가 생긴다고 왜 말해주지 않았냐고 말이다.
말해줬으면 가게에서 재우지 않았고, 집에서 쓰러졌다면 병원으로 빨리 옮겨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을 그랬다면서 원망을 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파일을 찾아보았더니 남편한테 공망살이 붙어 있었다. 점괘에 없었다면 내 실력이 모자랐다고 치면 그만인데, 점괘에 있는 것을 물어보지 않았다고 해서 말해주지 않았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워낙 젊은 사람이라서 ‘괜찮겠지’ 하고 무시하고 지나갔는데 변명의 여지없는 내 잘못이다.
점자(占者)란 자기감정이나 주관을 버리고 점괘대로 말해야 한다는 기본에 위배된 것이다. 그 당시 한참 장타를 치던 시절이라서 볼 카운트를 기다리지 않고 성급하게 초구를 휘둘러 병살타를 쳤던 것이다. 그 후로는 결혼한 여자 손님의 경우 무엇을 묻든 남편자리를 살피고 이상여부를 꼭 말해주는 버릇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