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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시
이름을 지운다
허형만
수첩에서 이름을 지운다 접니다. 안부 한 번 제대로 전하지 못한 전화번호도 함께 지운다 멀면 먼대로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살아생전 한 번 더 찾아뵙지 못한 죄송한 마음으로 이름을 지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몸이 먼저 아는지 안경을 끼고도 침침해 지는데 언젠가는 누군가도 오늘 나처럼 나의 이름을 지우겠지
그 사람, 나의 전화번호도 함께 지우겠지
별 하나가 별 하나를 업고 내 안의 계곡 물안개 속으로 스러져가는 저녁
---------------우리에게 살아가며 마주치는 무수한 만남의 이름들은 가깝게 또는 멀리, 모두 내게로 다가온 인연이었던 것, 그러나 이런 저런 일로 수첩에서 이름을 지울 수 밖에 없을 때, 또한 '누군가도 오늘 나처럼/ 나의 이름을 지우겠지' 그것 또한 충격적인 사실이 아닌가. 영원히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는 자가 되고자 했던 우리들, 그러나 이 시로 하여 그대는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 잊혀지고 지워지는 가운데 우리 삶의 일상들이 진행되어왔고 또 그렇게 고즈넉하게 함께 깊어가는 일이란 것을.
허형만 시인은 전남 순천 출생.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 1973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청명> <입맞추기> <첫차><영혼의 눈> <<비 잠시 그친 뒤><눈먼 사랑>등 12권의 시집. 평론집 및 수필집 다수. 편운 문학상, 한성기문학상, 월간문학동리상, 광주문화예술대상, 순천문학상 전라남도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 목포대 국문과 교수. <신지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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