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木蓮)
박주택
어둠을 밀어내려고, 전 생애로 쓰는 유서처럼
목련은 깨어 있는 별빛 아래서 마음을 털어놓는다
저 목련은 그래서, 떨어지기 쉬운 목을 가까스로 세우고
희디흰 몸짓으로 새벽의 정원, 어둠 속에서
아직 덜 쓴 채 남아 있는 시간의 눈을 바라본다
그 눈으로부터 헤쳐 나오는 꽃잎들이
겨울의 폭설을 견딘 것이라면, 더욱 더 잔인한 편지가
될 것이니 개봉도 하기 전 너의 편지는
뚝뚝 혀들로 흥건하리라, 말이 광야를 건너고
또한 사막의 모래를 헤치며 마음이 우울(憂鬱)로부터
용서를 구할 때 너는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말똥거리다 힘이 뚝 떨어지고 나면
맹인견처럼 나는 이상하고도 빗겨간 너의 그늘 아래에서
복부를 찌르는 자취와 앞으로 씌어질 유서를 펼쳐
네가 마지막으로 뱉아 낸 말을 옮겨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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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 목련이 진다. 그대는 이 시속에서 목련 유서를 주워들 것이다. '어둠을 밀어내려고, 전 생애로 쓰는 유서처럼' 꽃잎이 뱉아낸 말에 귀 기울여보라. 아프고 쓰라리다. 그대가 서있는 봄에 당도하기 위해 목련은 또 얼마나 거친 광야와 사막을 건너왔겠는가. 봄날의 목련나무 그늘이 깊어간 그 자리, '시간의 눈'속에 잠시 빛나던 존재들 스산하게 흩어져 거기 누워 있으리.
박주택 시인은 충남 서산 출생. 1986년 [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꿈의 이동건축」「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사막의 별 아래에서」「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등, 시론집「낙원 회복의 꿈과 민족 정서의 복원」평론집「붉은 시간의 영혼」과 소월시문학상대상, 현대시작품상 등을 수상했다.<신지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