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규 시인은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고, 고려대학교 국어교육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10년 {서정문학}으로 등단했고, 현재 거제도에서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이복규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인 {아침 신문}은 어둡고 우울하고 끔찍한 현실과 그 미래를 직시하고 있으면서도, 청량리역의 노숙자들, 고현시장의 사람들, 이혼위기에 처한 사람들, 임신한 아내와 실업자인 남편들에게 무한한 사랑의 노래를 부르게 된다. 왜냐하면 시인이란 “연인들의 숨소리/ 풀벌레 소리에 숨는 밤”, “이 밤 더디 가기를/ 이 밤 더디 가기를/ 달빛 굴리는 눈동자/ 속살이 눈부시다”([달빛 굴리다])라는 시구에서처럼 사랑과 행복의 연주자이기 때문이다.
보지 않은 신문처럼 쌓이는 오늘, 손톱 조각처럼 사라지는 오늘, 4살 소녀가 마을버스에 손이 끼인 채로 끌려가다가 차바퀴에 깔릴 것이다. 7살 소녀가 동네 아저씨에게 성폭행 당해 죽고, 2살 아기의 시체가 냉장고에서 발견될 것이다. 아침신문에 납작하게 퉁퉁 불어 피 흘리며 미래는 어김없이 현재가 되어, 쓰레기처럼 묻혀 있는 과거가, 현재가 되어 시체들이 누워있다.
---[아침신문] 전문
밤이 깊어지기를
밤이 깊어지기를
검은 빛에 물들어
흙의 촉수들이 속살 드러내고
발들 감싸 안을 무렵
무작정 집을 나가 길을 걷는다
담 낮은 마당에서 들려오는
등물소리에 피로가 맑다 맑은 피로
피로가 깨끗하다
걸음은 느려지고
귀는 어린 시절 소녀의 흰 살결 더듬는다
바람이 은빛 머리카락 날리며
새 신발 신은 소년처럼
빨라지는 밤
이제야 혼자다
혼자다
혼자
어둠이 묶여 있는 숲 속에서
연인들의 숨소리
풀벌레 소리에 숨는 밤
잠자기 아까운 시간
이제야 혼자다
혼자
이 밤 더디 가기를
이 밤 더디 가기를
달빛 굴리는 눈동자
속살이 눈부시다
----[달빛 굴리다] 전문
지금까지 살펴본 이복규 시인의 작품들은 모두 삶의 그늘과 관련된 것들인데, 사실 이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주 ‘개구지다’는 소리를 듣는 밝고 친근하고 웃음 많은 일상생활 속 그의 모습과 차이가 난다. 일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그의 모습은 가령 ?외식?에 나타나 있는 것과 같은 어른 개구쟁이의 모습이다. 그 시에서 화자는 비오는 겨울날 짬뽕집에서 아내와 함께 짬뽕을 먹으면서, ‘짬뽕’이라는 말의 어감이 주는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혼자 생각해내고는 실없이 키득거리기도 하고, 마주 앉아 짬뽕을 먹는 아내의 얼굴과 몸을 (그 ‘홍합처럼 볼그레한 볼’과 ‘새우 더듬이처럼 긴 속눈썹’과 ‘수타면처럼 탱탱한 흰 살결’을) 몰래 훔쳐보면서 즐거워하기도 한다. 개구쟁이 아이가 그대로 어른이 된 것 같은 욕심 없고 천진난만한 아이-어른의 모습이다. 그의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면모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러나 시를 통해 인상적인 모습으로 더 자주 마주하게 되는 것은 살펴본 것처럼 그늘 속에서 무언가를 위해 혹은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쏟고 있는 어른-시인의 모습이다. 아마도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 뒤에 삶의 그늘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있고, 또 그러한 시인의 마음 안에 맑게 비워진 빈 병의 마음이 있는 것 같다.
----홍기정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