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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소개
문정서의 시집 『야생의 여름을 주세요』는 상처 입은 존재들을 향한 깊은 애정과 연민, 그리고 치유와 평화를 향한 시적 열망이 응축된 작품집이다. 이 시집은 작고 연약한 생명, 외면당한 존재들 그리고 삶의 주변부에서 조용히 버티는 이들에게 다정한 시선과 언어를 건넨다. 시인은 그들의 고통을 응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상처에 새 생명의 가능성과 평화의 씨앗을 심고자 한다.
「블롭피시」는 가장 못생긴 물고기로 알려진 심해어 블롭피시를 통해 사회적 약자와 어머니의 형상을 교차시킨다. 극한의 압력을 견디는 생물의 기형적인 외양 속에서 시인은 ‘괜찮다’고 말하던 어머니의 침묵과 인내를 발견한다. 못생김이 아이들의 애착 속에서 오히려 귀여움으로 변하듯, 시인은 타인의 시선에 규정되지 않는 존재의 고유한 존엄을 포착한다. 또한 「붉은 드럼통」은 한때의 쓰임을 다한 드럼통이 화덕으로 다시 불태워지는 모습을 통해, 자신을 희생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조명한다. “미안하다 드럼통”이라는 마지막 행은 단순한 감상이 아닌, 존재에 대한 애틋한 연대의 고백이다.
시집에는 병든 소녀를 목련꽃 상여로 떠나보내는 「목련상여」,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평화를 꿈꾸는 「포연의 뿌리」와 「피스」 그리고 일상의 기적에 감사하는 「선물」 같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허공에 심어진 붉은 튤립”과 같은 표현은 기반 없는 곳에서도 피어나려는 평화의 의지를 상징하며, 진정한 평화는 타인의 존엄을 지켜주는 일상의 실천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시집의 표제작 「으아리」에서 시인은 “야생의 여름을 주세요”라고 말하며 척박한 공중의 세계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길 간절히 청한다. 이 짧은 시는 시인의 시학을 응축한 선언이자, 상처 입은 세상에 던지는 희망의 언어다.
이 시집 『야생의 여름을 주세요』는 흔들리며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시집이다. 문정서 시인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응시하고 감싸며 치유와 화해의 시를 써낸다. 시집을 읽는 독자는, 길가에 핀 야생의 으아리꽃처럼, 상처 입은 존재들이 품은 존엄과 빛을 새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추천 글
이 시집 『야생의 여름을 주세요』는 상처 입은 세계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을 위한 치유의 언어다. 문정서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사회의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 외면당한 이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 갇힌 이들을 한 편 한 편의 시로 불러내며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시집 곳곳에서 발견되는 사회의식과 이타적 태도는 문정서 시의 윤리적 깊이를 형성하고 있다. 그는 부조리한 세상, 뒤집힌 질서 속에서 고통받는 타자를 외면하지 않고, 거꾸로 뒤집힌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려 애쓴다. 또한, 문정서 시인의 시는 약자와 소외된 존재에 대한 단순한 연민이나 동정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의 시는 상처의 자리에 평화의 씨앗을 심고, 이 땅의 “야생의 여름”을 간절히 기원한다. _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후포항 카페리 한 척도 점이라고 했나. 점은 흔적이고 한 사람의 품보다 작고도 거대하고 아프고도 아름답다. 문정서 시인만의 현실적 경험을 토대로 한 서사를 보여준다. 그녀의 에피소드는 우리 모두의 정신적 상처이고, 죽음을 가진 몸 앞에서의 겸허함을 가지게 하며, 본래의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야생의 여름을 주세요』는 “포연 가득한 지구에 한 사람 튤립 두 사람 튤립을 피”워 평화를 주세요, 라는 간절한 주문으로 들린다. _이선애(시인)
시인의 말
기와를 타고 내리는 초여름 빗방울
그 빗방울이 누군가에게는 동무이기도 배반이기도 하다
한껏 무거워진 클레마티스
행방을 쫓아가는 근원이 된다
2025년 7월
문정서
시집 속으로
포연 가득한 지구에
한 사람 튤립 두 사람 튤립을 피우면
평화가 올까
-「포연의 뿌리」 부분
척박한 공중 세상에서
당신이 불어오길
기다려요
-「으아리」 부분
눈 한번 맞출 수 없는
나의 반려들이여
-「물속 세상」 부분
지구 반대편 봄날 기왓장 위에 앉은 새
피스피스피스 소녀의 울음 같은
-「피스」 부분
일생은 간데없어 죽어서도 아름다워라
겨울의 드라이플라워
-「꽃 화장」 부분
누군가의 손길로 채워진 물그릇
오래 굶은 고양이
헐떡헐떡 몸이 살아나는 것 보았나요
-「선물」 부분
나의 겹들을 하나씩 벗는다
물건을 버린다
겨드랑이가 가렵다
나에게도 날개가 돋아나려나 보다
-「그 섬에 가면」 부분
어쩌면 행운은 우편으로 보내는 것인지도 몰라
잘 도착했는지 회신 부탁해
아주 먼 곳의 클로이
-「내 작은 새 클로이」 부분
흐른다는 것은 생의 힘을 조금 빼는 것
빗물을 털고 날개 펼쳐 훌훌 날아가렴
-「흘러가는 새」 부분
사과, 억울하지만
이름을 빌려주기로 한다
동그랗고 빨갛고 탐스러워
베어 물기도 아까운데
온갖 난처한 일의 해결사
그래
이름 한번 빌려주자
-「사과를 심은 이유」 부분
눈길은 언제나 한 자리에 머물고
갈 수 없는 그곳으로 옮겨 주는 기억
오늘 나는 영원으로 가는
스르르란 말을 알게 되었다
-「스르르」 부분
하늘로 올라가는
하얀 연기
눈물도 마른 채
남은 자들은 말없이 생의 떡을 나눈다
-「흙으로 가는 길 -시립화장터에서」 부분
어쩌다 뭍으로 오른 너를 보았어
피부가 부풀어 올라 더 형편없는 모습에
너를 엄마! 라고 외칠 뻔했어
살만하게 되었는데
돌아가셨거든
-「블롭피시」 부분
자연에 해를 주지 않는 집
끝내 우리들을 자연으로 분해하는 집입니다
-「안풍동 통나무집」 부분
차례
1부 봄날 기왓장 위에 앉은 새
포연의 뿌리/ 물속 세상/ 으아리/ 마음상자/ 피스/ 꽃 화장/점/ 거미/
머릿속에 새가 살아요/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알아만 줘/ 알콜 중독/
선물/ 날마다 태우는 여자
2부 어쩌면 행운은 우편으로 보내는 것인지도 몰라
급류/ 그 섬에 가면/ 내 작은 새 클로이/ 너를 기억해 / 흘러가는 새/ 목련상여/
치셤 신부의 일기장/ 꿈꾸는 교실/ 물구나무로 세상 읽기/어린 청개구리의 울음/
기울어진 배추밭/ 누가 더 놀랐을까/ 씨감자/ 제비꽃
3부 담장 넘는 고양이 울음 들릴 때
지상과 공중 어디쯤 깃들어/ 사과를 심은 이유/ 서숙할매의 밭/ 가장 단단한 집/
둥이/ 그러지 말아야 했다/ 붉은 드럼통/ 한려해상/ 해피 죽도/ 베티 수녀님/
엄마 보러 가는 날/ 고요로 고열을 내리는 밤/ 개미는 개미의 걸음으로 나는 내 방향으로
4부 작약이 꽃을 피우면 세상은 붉어 아름다운데
어머니가 꿈에서 깨지 않으면 좋겠어요/ 스르르/ 기억하지 못하는 거울/
일곱 살에 갇힌 순자씨/ 흙으로 가는 길/ 한가위 혼밥/ 목화꽃 꽃말을 안으면/
상사호/ 사순절에 부치는 편지/ 신풍 바닷가/ 블롭피시/ 버드나무 옆의 프래 씨/
마한 유적/ 안풍동 통나무집
해설 _ 상처 입은 존재들을 위한 치유의 시학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문정서의 이번 시집 『야생의 여름을 주세요』는 상처 입은 존재들, 버려지거나 잊힌 것들 그리고 소외된 생명체들을 향한 따듯하고도 애틋한 시선으로 가득하다. 그의 시는 단순히 슬픔을 전시하거나 고통을 소비하는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통의 본질을 직시하면서 그 속에서 작은 평화와 화해의 가능성을 끈질기게 탐구한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작은 생명체, 우리가 무심히 스쳐 지나는 사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을 시적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내면과 상처를 연민과 사랑의 언어로 보듬고 어루만진다.
이 시집을 읽은 독자는 시집 전체에 걸쳐 시인이 보여준 사회의식, 윤리적 긴장감 그리고 이타적 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 문정서의 시는 외면당하는 존재들, 혹은 이름조차 붙여지지 못한 존재들에 주목하며 그들의 존엄성을 되살리고자 한다. 그의 시 세계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공감과 연대의 손길이며, 부조리한 현실을 넘어 평화와 치유의 길로 나아가려는 시적 저항이다.
상처의 치유와 평화에의 염원
문정서의 시는 상처 입은 존재들을 바라보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 상처의 자리에 새로운 생명과 평화의 싹을 틔우려는 치유적 열망으로 나아간다. 이 시집에서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그런 상태가 아니라, 상처 입은 이들의 고통을 덜고 그들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적극적 행위다. 대표적으로 「포연의 뿌리」는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도 평화를 피워 올리려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붉은 튤립이 허공에 꽃을 피우는 꿈을 꾼다
뿌리 없는 뿌리를 생각한다
뿌리는 포연 속에서 내리고
바닥을 모르고 상승하다 추락하는
꽃의 꿈
허공에 심어진 붉은 튤립은 자유로운 뿌리
경계를 지우는 우리의 밑동
포연 가득한 지구에
한 사람 튤립 두 사람 튤립을 피우면
평화가 올까
- 「포연의 뿌리」 전문
이 시는 전쟁과 폭력의 상징인 포연 속에서 꽃피우는 붉은 튤립의 형상을 통해, 인간이 꿈꾸는 평화의 가능성과 그 간절한 염원을 은유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시인은 ‘붉은 튤립’이라는 꽃의 이미지를 통해 피와 희생의 상흔을 연상시키면서도, 그 붉음 속에서 다시 피어오르는 생명과 평화의 소망을 노래한다.
시의 첫 구절 “붉은 튤립이 허공에 꽃을 피우는 꿈을 꾼다”는 전쟁의 황폐한 현실에서 허공이라는 아무것도 기대기 어려운 공간에조차 꽃을 피우고자 하는 평화의 꿈을 상징한다. 허공은 기반이 없는 불안정한 공간이자, 인간의 평화에 대한 갈망이 현실화되기 어려운 조건을 나타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 피어난 붉은 튤립은 포기될 수 없는 평화에의 염원을 상기시킨다. 특히 “뿌리 없는 뿌리”라는 역설적 표현은 폭력과 전쟁이 모든 기반을 무너뜨린 세계에서조차 사람들이 평화의 뿌리를 내리려는 고투를 상징한다. 뿌리가 없어도 뿌리를 내리려는 이 모순적 의지는 인간의 평화를 향한 간절함과 그 희망이 얼마나 허약하고 위태로운 것인지를 함께 보여준다.
그럼에도 시인은 “허공에 심어진 붉은 튤립은 자유로운 뿌리/경계를 지우는 우리의 밑동”이라고 노래하여 국가나 민족, 이념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평화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는 전쟁과 폭력이 경계 짓기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을 반영하며, 경계를 지우는 것이 곧 평화의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마지막 연 “포연 가득한 지구에/한 사람 튤립 두 사람 튤립을 피우면/평화가 올까”는 시의 주제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구절이다. 포연으로 가득한 지구, 즉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계 속에서 개인들의 작은 평화의 실천이 모인다면 평화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시인은 묻고 있다. 이 물음은 독자에게 평화의 실현은 거대한 이념이나 제도가 아닌, 개개인의 작은 의지와 실천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환기하며, 그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열어 준다.
다음 시에서는 좀 더 강력하게 평화를 원하고 있다.
축제가 있고 음악이 있고 춤이 있고 소녀가 있고
가자지구에는 전쟁이 있다
트럭에 실려가는 소녀에게
음악도 없고 춤도 없다
평화는 어머니가 딸을 품는 시간
돌아오기를 기도하던 어머니
소녀야 너는 평화를 울부짖는 새
지구 반대편 봄날 기왓장 위에 앉은 새
피스피스피스 소녀의 울음 같은
- 「피스」 전문
이 시 「피스」는 전쟁의 참혹한 현실과 그에 맞선 평화의 염원을 대비적으로 보여주며, 평화란 무엇인가를 독자에게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시는 첫 구절에서 “축제가 있고 음악이 있고 춤이 있고 소녀가 있고”라며 평화로운 삶의 풍경을 그린다. 축제, 음악, 춤 그리고 소녀라는 단어들은 생명력과 기쁨, 자유의 상징이다. 그러나 곧바로 “가자지구에는 전쟁이 있다”는 구절로 전환되어, 독자들은 이러한 기쁨과 생명력이 철저히 부정당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 짧은 전환 속에서 시인은 평화로운 세계와 전쟁의 참상을 극명히 대비시킨다. 시에 등장하는 소녀는 트럭에 실려가는 비참한 존재이며 그에게는 “음악도 없고 춤도 없다”. 이는 단순히 문화 향유 기회의 상실을 넘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존엄과 자유마저 박탈당한 상태를 의미한다. 전쟁은 소녀에게서 삶의 축제와 기쁨을 빼앗고, 오로지 고통과 두려움만을 남기고 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이 절망의 한가운데서 평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평화는 어머니가 딸을 품는 시간”이라는 구절은 가장 근원적인 사랑의 형상을 통해 평화의 본질을 드러낸다. 평화는 거창한 구호나 제도 이전에, 한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지키고 품는 순간에 깃드는 것임을 시인은 강조한다. 그리하여 “돌아오기를 기도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전쟁의 폭력성을 넘어서려는 간절한 마음이자 평화의 씨앗이 된다. 그 기도는 마침내 소녀를 “평화를 울부짖는 새”의 모습으로 변하게 한다. 이 새는 단지 가자지구의 전쟁터에 머물지 않고, 이곳까지 날아와 “지구 반대편 봄날 기왓장 위에 앉은 새”로까지 확장된다. 이는 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열망이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구 어디에도 공유되어야 하는 인류 보편의 문제임을 말하고 있다. “피스피스피스 소녀의 울음 같은”이라는 절묘한 음차를 이용해 만든 마지막 구절은 울음이야말로 가장 절박하고 진실한 평화의 언어임을 보여준다. 소녀의 울음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무언의 저항이자,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부르는 외침인 것이다.
이런 평화에의 염원은 다음 시 「선물」에서는 일상 속 작은 기적에 대한 감사로 이어진다.
해설 _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저자 약력
문정서
전남 순천 출생
시집 『야생의 여름을 주세요』
2025년 전남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전남백일장 장원
전남문인협회 회원
순천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반, 시우림 동인
정신보건전문요원
ja4u@naver.com
문정서 시집 야생의 여름을 주세요
상상인 시인선 076 | 2025년 7월 15일 발간 | 정가 12,000원 | 128*205 | 114쪽
ISBN 979-11-7490-000-5(03810)
도서출판 상상인 | 등록번호 572-96-00959 | 등록일자 2019년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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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라남도, 전남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