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현의 산문집 『그녀가 내게로 왔다』는 한 사람의 삶을 관통하는 섬세한 체험과 관계의 윤리 그리고 독서의 깊이를 아우르는 진솔한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다. 작가는 농촌에서의 삶, 가족과의 관계,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 속에서 겪고 느끼는 깨달음과 정서를 투명한 언어로 담아낸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삶에 대한 긍정적 자세로 세상을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사유의 글들로 채워져 있으며, 자기 성찰과 타인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글마다 스며 있다.
특히 표제작 「그녀가 내게로 왔다」는 제목처럼, 한 사람의 방문이 단순한 만남을 넘어 삶의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는 사건임을 보여주며, 관계란 서로의 삶을 기꺼이 맞이하고 받아들이는 윤리임을 감동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삶의 고단함을 견뎌낸 이들의 목소리는 때론 유머와 아이러니로, 때론 눈물겨운 진솔함으로 작가의 글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 더불어 작가는 책과 독서가 삶의 버팀목이자 자신을 구원한 벗임을 고백하며, 독서란 시대를 초월해 훌륭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이자, 자신을 확장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강조한다.
『그녀가 내게로 왔다』는 화려한 수사를 거부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진심을 전하는 글쓰기의 힘을 보여주는 산문집이다. 누군가의 작은 삶이, 바로 우리의 삶과 닮았음을 느끼게 하며, 독자에게 조용한 울림과 깊은 공감을 안겨준다. 이 책은 삶의 결을 정직하게 느끼고자 하는 독자에게 잔잔하면서 깊이 있는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작가의 말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려면 좋은 생각, 좋은 음식, 좋은 음악, 쉼이 필요하듯이 책을 쓰고 다듬는 일도 그러했습니다.
그렇게 쓴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으려 합니다. 시집을 먼저 내보냈을 때의 설렘과 떨림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감정이 아니라, 시간을 견뎌낸 기억들이라 더 조심스러웠고, 더 아팠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살아낸 시간을 다시 기억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이 글들이 누군가의 마음 한편에 가닿을 수 있다면, 그동안의 아픔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저의 우울이 치료가 되었습니다. 글의 힘인가 봅니다.
글쓰기는 멀리 가는 길입니다. 멀리 가는데 함께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춘천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책을 내게 됨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을 쓰느라 소홀했던 일과, 시간을 홀로 잘 견뎌준 남편에게 미안하고도 고맙습니다. 표지 사진과 본문 그림으로 책을 빛내 준 아들, 며느리, 가족 모두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2025년 6월
송이현
책 속으로
온몸에 돋은 좁쌀 같은 붉은 반점이 내 몸을 힘들게 했다. 마치 풀들이 내게 항의하는 것 같다. “우리의 세계에 들어온 당신은 침입자예요. 어서 나가 주세요.”라고 풀벌레들이 나에게 공격한 느낌이다.
-「어슬렁거리다 온다」 중에서
예측할 수 없는 소나기가 수시로 내리던 한여름,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보고 싶다.” 짧지만 깊이 있는 말이었다. 긴 머리는 물미역처럼 윤기가 흘렀고, 여름 모자를 멋지게 눌러쓰고 있었다. 비에 젖어도 끄떡없는 물방울 비옷과 여름 앵클부츠까지—우아함과 품위가 느껴졌다. 아픈 몸을 이끌고 내가 보고 싶어 찾아왔다니, 이보다 더 깊은 말이 있을까.
-「그녀가 내게로 왔다」 중에서
어느 해는 고구마 농사를 했다. 단순한 고구마 농사인 줄 알았는데 이 또한 가볍게 생각할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루 일을 마치고 고구마가 내 입으로 오기까지 몇 단계를 거치는가를 헤아려보았다. 몇십 번의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농산물 판매의 어려움」 중에서
시대를 초월한 매력을 지닌 그도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섬세하고 예민했던 그는 빈곤 속에서도 깔끔한 외모와 복장을 유지했지만, 그런 모습은 때로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을 불러왔다. 허영심으로 비칠 수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그는 타인의 시선에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멋진 남자와 데이트를 했다 」 중에서
그들이 심은 애플 수박이 잘 자라길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첫 농사라 걱정도 됐지만, 열매는 건강하게 여물어 갔다. 무더운 여름, 매미 소리가 요란한 날이면 수박 생각이 난다. 요즘은 계절 없이 비닐하우스에서 키우지만, 그래도 수박은 여름의 과일 아닌가.
-「애플 수박, 그 첫 번째 여름 」 중에서
매년 6월이면 어김없이 복분자 수확 철이 돌아오고, 나는 또다시 그 유혹에 빠진다. 가려움도 복분자 따는 계절이면 반복한다. 내 몸에 잠재된 그 무엇인가는 6월이면 다시 부활하나 보다.
-「가려움의 계절, 복분자의 유혹」 중에서
조용한 시간 속에서 책을 읽고, 사유하며, 내 안에서 자라나는 작은 열매들을 바라보는 것. 어쩌면 그 시간이야말로, 가을날 나무가 맺는 호두처럼, 내게는 가장 달콤하고 소중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상처 입고도 열매 맺는 호두나무」 중에서
정리되지 못한 감정, 놓치고 지나친 마음의 조각들. 그렇게 작고 사소한 감정들이 나를 흩트려 놓고는 아무런 인사도 없이 떠나 버린다. 나는 잠시 손을 멈추고 화면을 바라본다. 집중하며 썼던 문장들은 흐릿해지고, 머릿속은 하루살이의 짧은 흔적만으로 가득하다. 혹시 나도 하루살이 같은 존재가 된 건 아닐까. 잠시 머물다 사라지고 마는, 그 순간을 온전히 견디지 못한 가벼운 존재로. 그렇게, 필사의 하루는 조용히 저물어 간다.
-「하루살이의 하루, 나의 하루 」 중에서
차례
작가의 말
1부
어슬렁거리다 온다/ 글로 세상을 담아야지지/ 골목, 빵 가게가 사라지고 있다/ 미스테리 공원 조각상/ 그녀가 내게로 왔다/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 진정한 글의 힘/ 자기 관리도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에요/ 농산물 판매의 어려움/ 독서란 훌륭한 사람들과의 교류/ 멋진 남자와 데이트를 했다/ 도서관에 함께 가는 행복/ 가족 모두가 한방에서 잠들다
2부
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어요/ 그 많은 잉어는 누가 먹었나/ 기도하시는 어머니/ 만나고 싶은 사람/ 반려견과 함께하는 삶, 그리고 그 마지막/ 병천순대 한 그릇에는/ 소리들의 공동체/ 안전한 먹거리/ 미완의 소설, 가족이 독자/ 여름에 먹어야 제맛이다/ 침입자가 자기 집이라고 한다/ 한 알의 아스피린/ 홍천 사과 축제, 일거양득의 날
3부
그녀를 바라보는 동안/ 문학과 함께 늙어가는 작가 부부/ 새처럼 나무처럼/ 발레 ‘세비야의 이발사’를 보고/ 쏟아진 것은 물만이 아니었다/ 애플 수박, 그 첫 번째 여름/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옥수수 같은 하얀 이를 가진 그녀가 활짝 웃는다/ 젊은 부부에게서 배운 것/ 천오백만 원짜리 나무가 준 족쇄/ 당신, 오늘 좀 멋진데요/ 밤사이에 일어난 이태원의 그림자
4부
가려움의 계절, 복분자의 유혹/ 기차는 정원으로 간다/ 들깨는 해 뜨기 전에 털어야 한다/ 들판에 홀로 선 마음/ 상처 입고도 열매 맺는 호두나무/ 어느 작가의 어머니/ 의사 선생님, 양치 못했어요/ 조용히 흔드는 것들/ 친구는 어디에 있니/ 탱크 훈련소의 꽃밭/ 파라오 임금의 완고함처럼/ 한 송이 양귀비 같은 그녀/ 화장하지 않은 여자/ 『개인적인 체험』/ 『내가 떠난 새벽길』/『죽이는 수녀들의 이야기』
5부
『체 게바라 평전』/ 가지 많은 나무는 아름답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기쁨/ 누구나 적당한 페르소나는 필요하다/ 먼 길은 함께 걷는 것/ 조개탄을 닮은 호두, 미안해/ 천경자 그림 전시회를 다녀와서/ 천사가 따로 있나요/ 폭삭 늙었다는 말 한마디/ 하루살이의 하루, 나의 하루
작가 약력
송이현
고흥 출생
서울 디지털 사이버 대학(상담심리학, 사회복지학 전공)
김유정 기억하기 산문부문 우수상(2022)
『청계문학』 등단(2023)
강원일보 시니어문학상 산문부문 우수상(2023)
시집 『모든 만남은 이별을 품는다』(2025)
산문집 『그녀가 내게로 왔다』(2025)
sjsong56@naver.com
송이현 산문집 그녀가 내게로 왔다
2025년 6월 27일 발간 | 정가 15,000원 | 134*196 | 276쪽 | ISBN 979-11-93093-97-9(03810)
표지사진_황준영 |그림_용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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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춘천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발간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