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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시인이 지금껏 시조를 통해 시인 자신과 독자를 만나려 한, 사랑의 한 방식을 넌지시 펼쳐 보이며, 반평생을 안아 온 가난한 사랑이 김수엽 시조에 내정된 과거 시간을 천천히 걸어 나와 마침내, 우리 앞에 결코, 가난하지 않은 사랑의 기척들로 당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연”은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오고 가는 생명 있는 “숨소리들의 대화”란 것. 아름답고 처연한 사랑의 이름, 인연.
이처럼 인연의 ‘숨’소리를 엿듣는 것이, 김수엽 시조가 만나는 ‘사랑의 기척’이 오는 길목에서, 아름답게 꽃피고 있다. _해설(전해수 문학평론가) 중에서
시인의 말
내게도
당신에게도
몸속에 숨이 산다
그 숨을
꺼내 읽고
맛보는 게 인생이다
엄마는
희망이었고
어머니는
늘 눈물이다
2025년 4월
김수엽
시조집 속으로
미안하지 않은 게 없어서 또 미안하고
죽이고 불로 지지고 잘라서 먹는 날에
웃음을 찢는 기쁨
목소리 높이는 술
바닥에 툭 던져지는 소주병은 자유다
배고픈 사람들은 씹는 맛을 찬양하고
배부른 사람들은 입 모양이 게으르고
시간은 붉은 얼굴로 맛을 익혀 내민다
술잔이 비틀거리고 눈빛이 지쳐가면서
미안해 나만 먹어서
채워진 몸을 세우고
발걸음 돌돌 굴려서 밤길을 당겨간다
장마가 쓴 일기
빗물이 물어뜯어 쓴 폐허를 펼쳐본다
아직도 끝맺지 못한
문장들이 둥둥 떠서
흉터를 기록하는 저 어수선한 필체들
위급한 신고 따위에 귀 어두운 고급 독자
팔짱을 끼고 서서
활자가 너무 작아
흐릿해 안 보인다며 흙탕물을 탓한다
햇볕이 페이지 넘겨 밑줄 쳐 보여줄 때
주소가 사라진 집
눈물로 수북한 길
땀 흘려
발굴하는 장면 읽어갈수록 비극이다
염소는 초원을 기억하고 달린다
언덕은 칼바람을 부추기는 사막으로
흰 먼지 앞장세우고
대들며 오는 설국에
아침을
챙겨입고 온 한 쌍의 숨 먹먹하다
바닥을 들출수록 더 단단한 바닥이 와
그 입술 얼게 만드는 허탕인 노동들을
나무는
다 벗은 채로 바람 불어 놀린다
발자국 길이 된 길 허탈을 걸쳐 입은 입
고장 난 저 들판에다 숨겨놓은 보물이여
돋아라
초록의 불씨 오 들려오는, 숨기척
차례
1부 문장을 따라 밑줄 치며 걷는다
미안하지 않은 게 없어서 또 미안하고 19
누군가에게 집이다 20
뭐였을까 저 달을 가린 건 22
사과의 쓸모 23
장마가 쓴 일기 24
모과의 향이 흩날리는 풍경 25
입춘대길 26
불빛을 당기는 힘으로 28
다국적 오일장 29
기타 30
감자밭 읽기 31
염소는 초원을 기억하고 달린다 32
가장이라는 완벽한 습관 33
개미, 반복이다 34
자박자박 가로등 빛을 밟으며 35
도서관에서 햇빛 한 잔 문장 한 모금 36
맛있는 놀이터 37
석류꽃 38
2부 눈물이 아니었으면 상처가 무성해진
사랑, 보다 43
홍시 구독 44
사랑이 꿈틀꿈틀 45
시 한 편 필요할 때 46
받아쓰기 47
매미가 전송하는 사랑 48
그 봄은 어디서 사셨나요 49
때때로 없어지는 어처구니 50
백수의 하루 51
레몬 끌어안기 52
홍시의 사랑법 53
끈 54
내 숨소리를 꺼내 쓰다 55
강아지도 아는 봄 56
빵빵하게 배가 나왔으면 57
막, 생각하다 58
절정 59
하루하루 60
무서운 밤 61
상속받은 웃음 62
냉이꽃 63
3부 낯익은 바람들이 동행하며
버려진 의자 67
아파트가 동네에 이사 오다 68
아버지는 목수다 69
나무, 연출하다 70
그리움의 주인 71
신문읽기의 괴로움 72
지문을 풀어 쓴 자기소개서 73
망치론論 74
나무의 배역 75
하우스는 꽃들의 계절 76
생각을 견디면 아프다 77
일기예보 78
도시의 아이러니 79
때를 기억하는 봄 80
당겨져 주는 마음도 있지 81
노인병원을 끌어안은 봄 82
다독이며 꺼내는 골목 83
4부 또박또박 읽어온 그 이름을
어린 겨울을 품는 밤 87
일용하는 하루 88
가을 복숭아로 물든 마을 89
도대체 90
겨울 도감 91
햇빛포장도로 92
서쪽의 표정 93
봄이 앉아 있는 찻집 94
한 편의 가을 편지 95
빗물은 죄 없어 96
사과밭을 적는 중 97
바닷가 빵집 98
식사 시간 독해 99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100
자해하는 남자 101
나무의 근황 102
감자 도서관 103
마을을 시청하는 새 104
장맛비 관람하다 105
아버지의 구두 106
설거지하는 시간 108
새의 언어사전 109
해설 _ 사랑의 기척들과 ‘숨’ 111
전해수(문학평론가)
저자 약력
김수엽
전북 완주에서 태어났다. 1992년 중앙일보, 199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우리 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상쇠, 서울가다』 『등으로는 안을 수 없다』 『자음과 모음이 흙과 만나』를 출간하였다. 아르코창작 지원금, 서울문화재단 원로예술 지원금을 받았으며, 성파시조문학상 대상, 구지가문학상 특별상 등을 수상하였다. 오늘의시조시인회의 부의장, 전북시조시인협회장, 역류와 율격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ksooy99@hanmail.net
김수엽 시조집 자음과 모음이 흙과 만나
상상인 시선 060 | 2025년 4월 29일 발간 | 정가 12,000원 | 128*205 | 132쪽
ISBN 979-11-93093-89-4(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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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