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빈 시집 『달 먹은 고양이』에는 세상을 살며, 자신과 세상을 구별하지 않는 열린 교감의 시편들로 가득하다. 박수빈에게 겨울 하늘의 맑고 차가운 기운은 그대로 내면에 투영되어 ‘맑고 차가운’ 영혼의 고백으로 나타나고, 여름의 뜨겁고 습한 기운은 그것대로 내면의 열렬한 울림으로 드러난다. 예민한 시인은 외부와 내부를 구별하지 않으며, 날카로운 감각의 시인은 어느 것도 상대화시키지 않는 진정 일의적인 세계를 구축한다.
이처럼 그의 시집에는 안팎이 구별되지 않는 유장한 일원론적 연속성의 사유와 매우 정교한 시간관과 윤리학이 내장되어 있다. 열린 시, 어우르고 품어내는 시, 모든 감각이 여럿을 배제하지 않는 하나의 울림을 낳는 시가 들어 있다.
확실히 그에게 중요한 것은 명제가 아니라, 수행론적 가치이다. 그는 개념을 완성하는 시인이 아니라, 사건을 수행하는 시인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박수빈의 “달 먹은 고양이”와 함께 그것을 음미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대긍정을 실행하면 된다. _ 해설(김재홍 시인, 문학평론가) 중에서
시인의 말
네 번째 詩냇물을 건넌다
젖은 발목 곁의 돌멩이들은 알 모양
생명을 품은 몸
재갈재갈 이야기
그동안 얼마나 속도에 시달려 왔나?
부딪치는 물소리
낮고 넓은 곳으로
시집 속의 시
불온한 것들로부터의 초대
짐을 짊어진 당신은 달팽이인가요? 발을 떼어 봐요 부드럽게 내 안에 앉아요 사랑은 잠시 흔들릴지 모릅니다 도피처럼 시속 3,900키로 고도 7,780피트 숫자는 중요하지 않아요 박차는 동안 천둥이 치고 금이 간대도 번개의 길이 짜릿해요 상공에서 좌석 표시등처럼 윙크해 볼까요? 기상은 좋을 것으로 예보되었으나 기류 영향으로 부르르 떨 수 있습니다 이륙 후 지름길을 피해 되도록 연착하렵니다 흡연을 원하시면 낙하산은 제공하지 않아요 로코코 둥근 접시에 달빛 만찬을 해볼까요? 통유리에 폴딩도어는 어떤가요? 보다 캐주얼한 스타일이 여기 있습니다
잊고 싶은 것들 Fly, better fly!
그런데 당신의 발은 왜 자꾸 모래시계처럼……
처음의 눈동자로 흐르는 원자
분모만 커지는 분수처럼
0에 가까워질 뿐 0이 아닌 너
세상 떠나면 너로 떠돈다지
별 먼지 모래 돌멩이도 무생명
죽음 충만한 이 우주에 사는 게 소중해
크거나 작거나 누구나 꽃인 것을
꽃샘에 새로 돋는 잎들 싱그럽고
바닥에는 마른 잎
새 꽃에게 비켜준 모습
넝쿨은 손 뻗어 허공의 길 찾고
구름은 어디서 생겨 내게로 왔을까
구름으로 와서 바람으로 가는데
어디 흔적을 남길 것인가
처음 나 혼자 꽃 보러 왔을 때
아직이라 둘레를 서성였고
그다음 같이 왔을 때
가시에 웅크린 꽃망울
오늘 없는 그를 데리고 오는데
그림자도 따라오며 꽃잎에 스민 비의 날들
기억의 얼음장 밑으로
녹은 눈이 흐르는 풍경
끝의 시작 이어지며 끝도 시작도 없구나
차례
1부 모서리 없는 구름이라면
불온한 것들로부터의 초대 19
여백에 기대어 20
눈썹 사이로 찰랑거리는 아침 햇살이 21
아스파라거스 22
출렁이는 그늘 23
고슴도치 화석 24
수거함 25
웰컴 투 마이월드 26
우로보로스 28
둘치 30
품 안의 편지 31
처음의 눈동자로 흐르는 원자 32
졸업 34
뒤집힌 주머니의 먼지 36
편도 37
2부 태양 아래 끓어오르던 그 길은
연잎 프라이팬 41
하얀 와불 42
유기물 기르기 43
이 꼬리는 스프링이 아니야 44
그 회의록 46
원고지 47
향이 흐려져도 꽃은, 꽃 48
여울의 시간 49
자전거 핸들이 사슴의 뿔이라면 50
바지락 나비 52
가질 수 없는 문장들의 중앙 53
바람에 문이 끄덕 54
고이지 않는 얼굴 55
햇덧 56
들꽃요양원에는 내 오랜 그림자가 산다네 57
3부 세상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지저귐
검은 사람들이 내려온다 61
스마트 팜 62
플라스틱 섬 63
물결도서관 64
블랙 미러 65
새는 사이를 날아간다 66
풍향계 68
질경이는 무덕무덕 69
반죽 2 70
쇼트트랙 71
기우는, 우는 고요를 끌어안고 72
날던 영혼은 어느 공중일까 73
맨드라미 주술골목 74
흰 그늘의 사람 75
다정하고 나란한 편린들 76
4부 빛날 때나 사위어갈 때나 모두 그 사람이듯이
몰락을 유적이라 부르며 81
매미의 내용증명 82
출석부 변주곡 83
왜, 철쭉 84
기울어지려는 탁자를 잡고 85
너머 86
폐타이어 화분 87
모란댁 88
오드아이 89
파종 90
바람의 슬하 92
속삭이듯 팥칼국숫집 93
사과사회 94
튤립 95
흑자의 결 96
해설 _ 기울어지려는 탁자를 잡고 99
김재홍(시인·문학평론가)
저자 약력
박수빈
전남 광주 출생. 아주대학교 국문과 대학원 박사 졸업. 2004년 시집 『달콤한 독』으로 작품 활동. 『열린시학』 평론 등단. 시집 『청동울음』 『비록 구름의 시간』 『달 먹은 고양이』. 평론집 『스프링 시학』 『다양성의 시』 『관계와 시』. 논저 『반복과 변주의 시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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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먹은 고양이
박수빈 시집
상상인 시선 059 | 2025년 4월 11일 발간 | 정가 12,000원 | 128*205 | 122쪽
ISBN 979-11-93093-88-7(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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