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바퀴 -양수덕 시집
(상상인 시선 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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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한 대상에 대한 쓰기는 언어로써 매 순간 지금, 여기서, 부재하는 대상에게로 뻗어가는 행위이다. 『자전거 바퀴』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시인의 가족사를 되짚어보거나, 어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의 장면들을 계속해서 되감으며 그날의 이야기를 복기復棋하는 데 충실하다. 시인은 유년과 과거의 기억들을 회상함으로써 부재하는 어머니와 소통하려 하거나, 못다 한 어머니의 고백을 대신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말 그대로 양수덕 시에서의 회상은 부재의 대상을 현존재로 다시 만나는 과정이자, ‘어머니와 나의 유대’를 견고히 확인하는 수단이다. 시인은 이 모든 작업을 통해 기억이란 망각의 잔여물에 불과함을 거부한다. 부재와 상실을 담보하는 기억은 고통을 동반하지만, 양수덕의 시에서 내면에 뿌리내린 기억은 오늘이라는 일상의 바퀴를 굴리는 황홀한 힘이기도 한 것이다.
_ 신상조((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한 사람이 가고
남은 한 사람 저녁의 휜 가지에 걸려 있다.
피보다 진한 영혼으로 맺은 관계라고 말할 수 있어서
달빛 충만하다.
둘의 영혼이 자전거의 바퀴라면……
벗은 영혼에게 옷을 입혀주려니
시가 부스럭거렸다.
덩달아
지난날의 덜 떨어진 한 사람 숨을 곳이 없다.
2023년 또다시 초록 잎 거저먹는 날에
양수덕
시집 속의 시 세 편
대나무는 어떻게 사나
거센 비바람이 두 쪽 열 쪽을 내도 꺾이지 않았다
마디마디 꼬장꼬장하다
몰아친 비바람 흔적 위에
또 철없는 바람이 한 수 아래 지문을 찍는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빈방이 가슴에서 생겨난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아지는 물결에 쓸려
음악의 표정을 이은 그리움 빈속을 울린다
보이는 것은 다
만져지는 것은 다
자신 아닌 헛것
별빛으로 속을 채우면 하루치 숙제가 끝나는 거야
가만히 귀 대면 그런 엄마의 혼잣말이 쓸려 나온다
태생의 하늘 올려다보며
틈새도 구부러질 수 없는 엄마
자장가를 쓰다듬다
보드라운 깃털로 싸인 밤에 안기면 숨소리조차 시끄러워 거친 숨 내려놓고 생각을 거두고 오직 잠으로 가는 여행에는 아픔이 없어 두려움이 없어 걸림이 없어 지저분한 내장 다 골라 버리면 잠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살을 얻지 목화솜 타고 오는 잠 자장 자장 자장……
살에서 삐져나온 뼈처럼 다른 밤으로 갈아타는 엄마 보드라운 깃털들 빠져 빨간 맨살 드러내며 엄마에게 이주 신고를 마친 밤 기침과 가래가 밤의 속삭임은 아니야 뒤척이는 잠이 밤의 묘약이 아니야 가면을 벗어 벗어봐 보드라운 깃털로 싸인 밤 자장 자장 자장……
맨드라미를 알기까지
엄마의 바코드를 읽어줄 사람이 없었어요
젊은 엄마가 목 부스럼 위에다 보라색 물약을 칠했어요
발라도 낫지 않는 엉터리였지요
그 물약 오래 덧칠하다가 바랜 자줏빛 엄마가 피어났어요
아주 까슬까슬한 그늘이었어요
빗줄기들이 슬픈 눈매로 때 가리지 않고 건너오고
어느 날 오글오글한 알들이 슬었어요
어찌 그리 용하게 알짜 토종인 여인을 찾아왔는지
이듬해 꽃을 흉내 내며 달려들었어요
다음 생까지 따라가려 틈을 보았지요
빗줄기들로 엄마의 바코드가 완성되었어요
누구와도 젖을 수 없는 비망록이었어요
엄마는 오래 견디며 시들어가다가 어느 때부터
맨드라미의 반달 눈웃음만 보여주기로 했어요
어느덧 다 해진 엄마가 허공에 들자
바코드가 까만 빗줄기들을 떼어내기 시작했어요
목차
1부
유품 1
유품 2
유품 3
유품 4
유품 5
유품 6
유품 7
유품 8
유품 9
유품 10
유품 11
유품 12
애창곡 1
애창곡 2
2부
푹푹, 겨울잠
너무해 물귀신
여름
간식 시간
젊은 날의 초상화
겨울 사랑
행복이 가득한 집
나무꾼과 선녀
바람의 탄생
목련 방
달빛
한가한 날
생일 선물
3부
정원의 인상
먼, 멀어서, 멀리
헤픈 노랑
가지는 시시껄렁해서
지난 한때의 어떤 살생
투명한 무늬
겨울 배추밭
우기
바다에 홀리다
거리 두기
빛나는 그늘
꽃밭이 섭섭해
날개는 진화한다
아침에만 백작 부인
4부
전원생활
우주인 소식
약손
봄, 피해가다
내가 본 점묘는 은빛이었네
오두막 편지
한복은 어디에서 왔나
유니콘
상상을 부추기다
꽃의 마침표
달콤한 마지막
마지막 옷
껍데기
엄마가 왔다
공짜는 닳고 닳아
물구나무선 풍경
해설 _ 기억의 황홀한 복기復棋
신상조(문학평론가)
저자 약력
200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신발 신은 물고기』 『가벼운 집』 『유리 동물원』
『새, 블랙박스』 『엄마 』 『왜 빨간 사과를 버렸을까요』 『자전거 바퀴』
산문집 『나는 빈둥거리고 싶다』 동화 『동물원 이야기』
소설집 『그림쟁이 ㅂㅎ』 『눈 숲으로의 초대』
gchisong7@hanmail.net
자전거 바퀴
양수덕 시집
상상인 시선 038 | 2023년 8월 17일 | 정가 10,000원
규격 | 128*205 | 130쪽 | ISBN 979-11-93093-09-2(03810)
도서출판 상상인 | (06621)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 74길 29, 9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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