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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춘옥 시인은 질문을 던지며 결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각 문장에 부여한 역할과 제시된 맥락은 하나의 단서로 이어진다. 주변을 감싸 안는 따뜻한 “서정적 심성”은 섬세한 회화적繪畫的 이미지로 독자에게 흡수된다. 시 쓰기는 실존에 다가가 삶의 본질을 관찰하고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기에 자신, 또는 타인을 위한 위로 앞에 더없이 진지하다. 그는 관심 밖으로 밀려난 존재의 이면을 ‘클로즈업’하고 자연과 사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작품성을 획득하고 있다.
마경덕(시인)
시인의 말
젖은 잎에 밤이 젖었다
새벽의 이마가 흥건했다
때로는 폭우에 갇힌
언어를 건져내느라
시가 앓았다
수많은 변명의 잎들이
비로소 침묵하게 되었다
2023년 2월
원춘옥
시집 속의 시
사과의 변명
치밀하게 익어가던 사과의 약속들
지키지 못해
누구에게는 사과가 되고 변명이 되는
바람의 내력과 사람의 서사를 담지 못해
시고 떫은맛이 허공에 달려 있다
꼭지를 놓친 미완의 사랑은
한쪽이 눌리거나 짓물러서 일찍 마침표를 찍었다
바구니에 담겨 덤으로 얹히거나 짐승의 밥이 되었다
제대로 완숙한 적 있었을까
당도를 공략한 벌레들이 파고들 때마다
한쪽이 허물어지는 소리를 내야 했다
바람이 불면 바람에 흔들리고
달콤함이 확률적인 사과 앞에서
우리의 사과도 달콤하거나 시거나
변명은 확률적이다
울음을 프라이하는 시간
한 알의 울음을 프라이했어
검은 팬에 둥글게 번지는 달빛처럼
달이 뜨는 순간이야
자잘한 걱정을 비비고 싶은 날이나
냉면으로 더위를 식힐 때에도
달처럼 떠 있던 달걀 프라이
샌드위치에 얹힌 얄팍한 시간은 자주 찢어지고
설익어 비린내 나는 반숙의 날은 흔들렸지
껍질을 벗겨도 흘러내리지 않을 완숙의 시간을 견디며
단단한 것도 쉽게 깨진다는 것을 알기까지
흰자 노른자가 서로 엉기어 찜이 되기까지
꿈은 번번이 따로 놀았지
가지런히 줄을 맞추고
무정란의 시간에 부화의 날을 기다려도
불임의 냉장고는 싸늘해
껍질을 버린 것들은 물렁한 달이 되어 반죽과 섞이고
달이 뜨지 않는 밤에
닭들의 울음이 생략되어
우리들의 울음이 꼬끼요
목차
1부
달맞이꽃 행보
사과의 변명
분홍 발목들이 일어서는 시간
울음을 프라이하는 시간
팔자를 말한다면
봄은 미션
나비프로필
사진관
부레옥잠
두부
불꽃
나무는 몸무게를 재지 않는다
2부
덩굴장미는 무엇으로 공양하나
링
솟대는 느낌표
자전거와 아버지
망
우리라는 돌담
환삼덩굴 전사
안경은 두 개의 방
봄의 페이지는 얼마나 될까
비누의 문장
생강나무
맨홀
진화론자
3부
애기똥풀꽃
불만제로
할 말은 많으나 이만 줄입니다
비림의 이력
등, 등
껍질들
어름사니
보라매 연못
목련
조개구이
가마솥꽃
그날의 출석부에 사월이라 쓰고
널배
4부
유리창족
오동나무, 추억을 먹고사나
자라는 발
닫힌 문
담장에 채송화가 있는 고시원
오이지는 누구를 위하여
이국적
꽃은 봄의 주식을 거래한다
어느 날 호박죽
나팔꽃 연대기
바람씨앗
해설 _ 여백이 아름다운 묵화들
마경덕(시인)
저자 약력
원춘옥
• 시, 서예, 캘리그래피, 수묵화가
• 서울 출생, 국문학 전공
• 2004년 『문학세계』 등단
*시집 『할 말은 많으나 이만 줄입니다』
• 호국보훈문예작품공모전 詩부문 우수상
• 개인전 〈물꽃피다〉 外
• 대한민국미술대전, 대한민국서예대전 수상
• 현 금천문화원, 서울50플러스센터 수묵캘리그래피 출강
이메일: spring149@hanmail.net
블로그: https://blog.naver.com/spring149 여람시서화
할 말은 많으나 이만 줄입니다
원춘옥
상상인 시인선 030 | 2023년 2월 27일 발간 |정가 10,000원
규격 |128*205 | 116쪽 | ISBN 979-11-91085-87-7(03810)
도서출판 상상인 | (06621)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 74길 29, 904호
Tel. 02 747 1367, 010 7371 1871 |Fax. 02 747 1877 | E-mail. ssaangi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