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환 시집 - 위선환
(상상인 기획시선 1)
,
사유가 있는 큰 시, 확장하고 심화한 큰 시
“언어의, 그 능력과 그 자유와 그 정직이 시를 확장하고 심화하는 가능성이다. 언어의 이 가능성이 나에게는 ‘서정적 전위성을 확보한, 사유가 있는 큰 시’를 가늠하게 한다.”
갈수록 서정시의 진수를 보여주면서 한국시의 깊이를 가늠하게 했던 위선환 시인이 직전에 발간한 시집『시작하는 빛』에서 말했던 “사유가 있는 큰 시”의 실현으로서 『위선환 시집』을 출간했다. 이 시집은 『순례의 해』, 『대지의 노래』, 『시편』 등 세 권의 신작 시집을 한 책으로 묶어 간행한 것으로서, 위선환 시의 결정結晶이라고 일컬을 만한, 주목되는 시집이기도 하다.
시집을 해설하는 글로서 「정중동靜中動, 용언의 시」를 쓴 조강석 평론가는 “무에 가까워질수록 고집스럽게 실제의 일부를 이루는 시선이 있듯이, 자신을 거듭 비우면서 동시에 세계가 기우는 것을 감당하는 언어가 있다”고 말하고, 『위선환 시집』에서 “느껴지”는 ”풍경에 연連한 시선과 풍경에 꿰뚫리는 시적 주체의 교호와 길항“에 관하여 서술하면서 ”아니, (“느껴지”는 것만이 아니라) 움직이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적합할 것이다. 이 시집에서 틀림없이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 : 움직이고 있는 게 무어냐?”고 묻는다.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서, 이제 시집 속으로 들어가 보자.
모든 음악에 비가 내린다 구부려서, 이튿날과 다음 날이 지나간 하룻날에 날은 개고
이래로
등가죽이 마른다
먼 저기와 가까운 여기와 곳곳에 티끌이 난다 구부려서, 등 기대고 숙인 목덜미에
먼지가 쌓인다
강은 길고 굽고 은빛 비늘들이 빛난다 나는 꿇고 주먹 쥐어 무릎에 얹고 구부려서,
물에 대고
누구의 이름을
부른다
산 너머로 날아가는 새의 목 잠긴 울음소리를 듣는다 구부려서, 산 아래 그늘에서
가뭇,
가뭇,
나비가 난다
대지는 낮고 어둑하고 흙이 마르는 냄새가 난다 구부려서, 손톱과 발톱이 갈라지고
발가락에
티눈이 자란다
등불 들어 제 주검을 비춰보는 사람이 있다 구부려서, 하루가 느리게 기운 늦저녁에
세워둔 돌이
천천히
넘어진다
마지막 악장에서 전갈좌가 빛난다 구부려서, 북한강에 잠긴 별자리들이 소란하므로
한 사람이
굽히고, 허리 꺾고
들여다보는,
- 「시간 구부리기」 전문
“시집 『시작하는 빛』에 발표한 시 「죽은 뼈와 인류와 그해 겨울을 의제한 서설」과 이 책에 실은 시 「순례의 해」 「대지의 노래」 「죽은 자의 장章」을 합하여 4부작을 모두 발표할 수 있어서 잘 됐다.”
- <시인의 말>에서
“나의 시에서 주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언어는, 사람의 시작과 끝은, 사람의 지금과 여기는, 사람의 터인 대지는, 사람으로서 산 자의 죽음과 죽은 자의 그 다음은, 사람의 구원은, 신은, 반드시 나의 시의 큰 주제다.”
- <뒤표지 말>에서
시집 『시작하는 빛』에서 시의 주체로서 ‘사람’을 말한 시인은, 이 시집에서는 사람의 언어, 사람의 시간, 사람의 공간, 사람의 터인 대지, 사람의 죽음과 그 다음. 사람의 구원, 신, 등 확장하고 심화하는 주제를 다루었으며, 주제가 그러하게 확장하고 심화한 만큼, 전개되는 세계 또한 그러하게 확장하고 심화하는 시를 시도하고 실현했다는 말이 되겠다. 괄목할 만한 예로서 위 <시인의 말>에서 열거한 4부작을 들고 있는 것이다.
시집에 실린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순례의 해』
순례의 해/새벽에/초점/모서리/안, 에/옹이/연지/가리키다/문득/바람소리/바람의 뼈 1, 2/뼈가시/그는 새를 기르는 사람이다/물낯에/서리꽃/없는/당기다/영상影像 1, 2/균열/기울다 1, 2/불빛/잔광殘光/잔상殘像/아름/설맹雪盲/흰,/동천冬天/말 1, 2, 3, 4, 5/일식/흑점/설한雪寒/겨울잠/눈향기/연기年紀 1 , 2/무명無名 1, 2/목소리/오월제祭/주註 1/불씨/박쥐/눈의 전설/섬과 바람과 선돌과/서해안/포구/돌하늘/유지遺址/시원始源/무릉반석에서 만나다/탈/폐사지/설악골/산을 주제로 한 열세 마디의 선율선線
『대지의 노래』
산 자의 기도문에 붙이는 각주/하늘의 그늘/사이/뼈다귀/새와 돌과/굽이/포커스focus/소실점/할퀴다/벼랑 1, 2/빙하기/추락의 기억/부재/돌아보다/회귀/시간 구부리기/눈의 발견/동행/물빛과 바람과/바닥/주저흔/여자, 들/사람, 들/시인, 과/등뼈/서리무늬/볕/청淸/정淨/정靜/한閑/쉼休/적笛/적寂/틈/문紋/꽃차례/비늘가루/영影/나무는 어두워지지 않는다/새의 층위層位/눈결정/달빛 1, 2/그 섬의 축제/풍화기風化期/동지점冬至點 1, 2/소설小雪/사구砂丘/놀/초승/늪/장흥/대지의 노래
『시편』
죽은 자의 장章/본색本色/자국/무릎/ 첫눈/여백/일식/구비口碑/행려行旅 1, 2/결빙점 1, 2/징후/그 며칠 1, 2/단청/청명淸明/나비 1, 2/섬 1, 2/놀/심해구深海溝/화석 1, 2, 3, 4/설편雪片/귓속말/저물녘에 1, 2, 3/우기 1, 2, 3/추수기/바람과 잎과 눈이/적설기 1, 2/겨울 이야기 1, 2/북한강/점묘點描 1, 2, 3, 4/소한小寒/새소리 1, 2/별자리/잔명殘明/바람냄새/별사別辭 1, 2/구름의 장례/그림자/탐진강, 그 뒤/설청雪晴
해설 | 정중동靜中動, 용언의 시 ·조강석
한편, 시인은 이 시집 간행 직전에 위선환 시의 시론이며 사유이고 궤적이기도 한 시 에세이집 『비늘들』(2022년, 도서출판 상상인)을 발간하여 위선환의 시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위선환 시인은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1960년에 서정주, 박두진이 선選한 용아문학상으로 등단했다. 1970년부터 이후 30년간 시를 끊었고, 1999년부터 다시 시를 쓰면서,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 『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 『새떼를 베끼다』 『두근거리다』 『탐진강』 『수평을 가리키다』 『시작하는 빛』 외에, 합본시집 『나무 뒤에 기대면 어두워진다』 시 에세이집 『비늘들』을 펴냈다. 현대시작품상, 현대시학작품상, 이상화시인상을 받았다.
[ⓒ LA코리아(www.lakorea.net),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