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길 시인, 신작 시집 『지상의 커피 한잔』 발간
대지의 시인, 꿈을 경작하는 농부, 사무사와 시즉절의 모범답안
김호길 시인의 신작 시집 『지상의 커피 한잔』이 문학아카데미시선 311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집은 제1부 <오래된 시간 앞에서> 제2부 <고독한 사이프러스> 제3부 <미안, 미안> 제4부 <철들기는 글렀네> 제5부 <시인의 에스프리>에는 이향아 시인의 해설이 수록되었다. 이향아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해 “반세기 동안 고국을 떠나 살면서도 모국어의 진국에 젖어 있는, 변함없는 시인의 정서”를 상찬하였다. 더불어 박제천 시인은 “직정적이되 삿됨이 없는 사무사(思无邪)와 간절함이 지극한 시즉절(詩卽切)의 모범”이라며 이번 시집의 의의를 새겼다
“섬광 같은 시를 쓰고 싶다”는 시인, 시는 고통과 눈물 속에서 걸러낸 소금이라고, 시는 낙타의 등에 얹힌 무거운 짐, 평생을 모시고 살아야 할 신전(神殿)과도 같은 짐이라고 말하는 김호길 시인, 그러나 사슴의 머리에 얹힌 관(冠), 그로 인해 아무런 애로나 위험이 닥치지 않고 오로지 우뚝한 관으로만 존재하기를 바란다.
김호길 시인! 2021년의 여름, 『지상의 커피 한 잔』을 출간한 일은 참 잘한 일이다. 앞으로도 계속 자유로운 형식의 시, 아무런 구속 없이 피를 토하듯이 토로할 수 있는 시를 부디 많이 쓰시기 바란다. 반세기 동안 고국을 떠나 살면서도 모국어의 진국에 젖어 있는, 변함없는 시인의 정서에 필자는 며칠 동안 즐겁게 빠졌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향아(시인, 호남대 명예교수)
김호길 시인의 시는 직정적이되 삿됨이 없는 사무사(思无邪)와 간절함이 지극한 시즉절(詩卽切)의 모범을 보여준다. 공자가 말하듯최상의 꾸밈이 바르고 희디흰 마음바탕에서 우러나온다는 회사후소(繪事後素)의 경지다. “시란 모름지기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하고 천의무봉(天衣無縫)으로 막힌 데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인의 작시법이 빛을 발한 것이다. 오랜 떠돌이의 삶에서 갖가지 야생의 시화(詩花)를 피워낸 유목시인의 비밀한 정원, 독자 여러분과 함께 즐기기를 바란다.
―박제천(시인, 문학아카데미 대표)
▶프로필: 1943년 경남 사천시 출생. 1963년 개천예술제 제1회 시조 백일장 장원. 1965년 서벌, 박재두, 김춘랑, 김교한, 조오현 등과 <율시조 동인> 활동. 1974년 대한항공 입사 국제선 파일럿. 1981년 대한항공 사직 후 도미. 미주중앙일보 기자. 1984년 해바라기 농원(Sun Flower Farm) 설립. 1988년 멕시코 바하캘리포니아에 법인 설립.
현대시조문학상. 미주문학상, 한국펜클럽 시조문학상, 시조시학상, 동서문학상, 유심작품상, 팔봉문학상 등 수상.
시조집에 『하늘 환상곡』 『수정목마름』 『절정의 꽃』 『사막 시편』 등이 있으며, 영문시조집 『Desert Poems』와 수필집 『바하사막 밀밭에 서서』, 홑시조집 『그리운 나라』 등을 간행함.
<시인의 말>
영혼의 음악 같은 시
나는 평생을 떠돌며 살고 있다. 그러므로 발표된 시를 스크랩하거나 달리 보관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언젠가 “내 시는 철새의 깃털”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떠돌이의 삶에서 날아가지 않고 남아 있는 시가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 철도 들기 전인 갓 스물 나이에 <개천 예술제>의 장원에 뽑히면서 시를 쓰게 되었다. 나는 시인이 되기 위해 문과를 지망하거나 문학과 관련된 직업을 택해 본 적도 없다. 그러나 내 나라를 떠나 타국으로, 도시에서 사막으로 옮겨 살면서도 문학의 길을 지켜왔다는 것은 기적이다. 아니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작파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운명은 내 의지보다 강했다.
그동안 떠돌이 삶에 원고청탁을 받고 쓴 것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시조에만 애착을 두었고, 격식을 갖추지 않은 보통 시에는 애정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시상이 떠올라도 두고두고 시조가 될 때까지 기다리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이번 시집은 나로부터 푸대접을 받아온 시들 63편을 묶어 내는 것이다.
꾸룩꾸룩 우는 새처럼 나도 모르는 노래를 꿈결처럼 읊은 것도 있고, 어느 때는 나무 그늘에 하릴없이 앉아 독백하듯 적은 것도 있으며, 어느 때는 나 혼자만의 위무처럼 중얼중얼 읊은 넋두리도 있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시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오게 되다니, 감개무량하다.
나는, 시란 모름지기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하고 천의무봉(天衣無縫)으로 막힌 데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정시란 원래 그리스의 음유시인들이 루라(Lyre, Lura)라는 악기에 맞추어 노래하였듯이 시와 낭송, 시각과 청각이 어우러져 감동을 주어야 한다.
좋은 시를 쓰고 싶다. 내 영혼의 음악 같은 시를 쓰고 싶다.
이번 시집 『지상에서의 커피 한 잔』은 시인 이향아 교수님과, 시인 박제천 선생님의 각별한 관심과 사랑의 힘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별스럽지 않은 시를 잘 풀어주신 이향아 교수님께 특별히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2021년 오월에 김호길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오래된 시간 앞에서
19 | 지상의 커피 한 잔
20 | 오래된 시간 앞에서
21 | 천사표 꽃장수
22 | 수리수리 마하수리
23 | 뭇국을 마시며
24 | 쌩쌩
25 | 제 발로 걸어서 뒷동산을 오르는 일
26 | 천사들의 도시 로스앤젤레스
27 | 그네
28 | 칠십견七十肩 통증
29 | 사는 법
30 | 평안하다
31 | 갈매기
32 | 산책길에서 너를 스친다
33 | 북극 늑대 이야기
34 | 왕매미
제2부 고독한 사이프러스
37 | 네잎클로버
38 | 낭만 만세
39 | 까치갈매기
40 | 카멜레온
41 | 자카란다
42 | 은행나무
43 | 야자수
44 | 아귀를 먹으며
45 | 수세미
46 | 비트
47 | 태양은 팡파르를 울리며 솟아오른다
48 | 고독한 사이프러스
49 | 옹이
50 | 유레카Eureka 나팔꽃
51 | 운명
제3부 미안, 미안
55 | 비빔밥
56 | 장을 보러 와서
57 | 헛소리
58 | 한 치 앞을 못 본다
59 | 포도주잔을 높이 들고
60 | 백마는 가자 울고
61 | 기계 세탁소에서
62 | 미안, 미안
63 | 자유라는 새
64 | 금테 모자에 정복 입은 분을 보면
65 |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66 | 그의 소식이 궁금하네
67 | 세종대왕님은
68 | 후지 사과
69 | 골프장 그린 위의 기러기
70 | 고층빌딩에 계신 분을 만나면
제4부 철들기는 글렀네
73 | 신기루
74 | 도심의 반달
75 | 치과에서
76 | 가짜 이빨
77 | 귀신 잡는 해병
78 | 리오그란데강의 비가悲歌
80 | 길 잃은 양떼가 많기 때문에
81 |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인
82 | 지구를 닦다
83 | 살다 보니
84 | 인두겁을 쓰고
85 | 알라와 얼라
86 | 철들기는 글렀네
87 | 도피
88 | 카오스Chaos
89 | 말벌
제5부 시인의 에스프리
93 | 이향아 해설
대지의 시인, 꿈을 경작耕作하는 농부
<시집 속의 시 한 편>
「지상의 커피 한 잔」
이것이 지상의 마지막 커피라 가정하고 눈을 감아보네
잠시 후 저 망막한 북극 만년설 위로 가거나
사하라 사막 벌 아니면, 태평양의 거센 파도 위나
우주를 스치는 별밭쯤을 지날 수도 있고
캄캄한 무의 회오리 속일 수도 있고
쿠란의 불지옥 그 앞으로 간다면
커피 맛이 어떻게 달라질까 상상해 보는 중이네
모르겠네, 아직 가본 적 없는
그 성소의 종루에서
종소리가 아주 멀고 은은한 그 시간쯤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네,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지상의 커피 한 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한 잔
커피 맛이 아주 다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