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조동범 시집
(시작시인선 373)
저자 : 조동범 200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산문집 『보통의 식탁』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비평집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 출간. 청마문학연구상, 딩아돌하작품상, 미네르바작품상, 김춘수시문학상 등 수상.
시인의 말 제1부 완벽한 저녁을 향해, 죽음의 문장처럼 오랑 13 휴스턴 15 1월 18 총체성 20 선셋 22 극의 역사 25 인터내셔널 26 세계의 모든 석양 28 수취인 30 호라이즌 32 영웅담 34 현대성 36 원근법 38 타투이스트의 끝없이 흘러나오는 비문과 축문과 무너지는 구름의 기원과 축복과 40 기묘한 국숫집 42 제2부 존과 제인과 암스테르담행 심야 버스 Jane Doe 47 John Doe 49 뒤따르는 침묵 50 친애하는 고인들 52 입동 54 암스테르담 56 종種의 애도 58 개와 늑대의 시간 60 플라세보 62 파일럿 64 드라이플라워 66 스톡홀름 68 일 년 전의 낮과 밤과 당신과 70 고전적인 밤의 익사체 72 알레고리아 74 제3부 난센 난센-첫 번째 이야기 79 난센-두 번째 이야기 81 난센-세 번째 이야기 83 난센-네 번째 이야기 85 난센-다섯 번째 이야기 87 제4부 모나카와 슬픔과 모든 애도의 밤 동물원과 기린과 헤어질 수 없는 연인들 93 해변의 산책 96 태극당 모나카와 어느 오후의 줄줄줄 98 세계의 끝과 여전히 다정한 연인들 102 당신의 손등과 동물원과 모든 이별의 전조 106 터널 속의 기린과 눈물이 마른 소녀들 109 이야기의 끝과 시작처럼 112 엘리펀트 116 구름의 경로 118 얼음 물고기 121 수면의 배후 124 불가촉의 음성과 모든 애도의 밤 126 공휴일 128 매일매일 밤의 끝과 당신이라는 소녀 130 그러니까 가령 오후는 132 해설 권성훈 시인의 묘비명과 황혼의 문장 134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 지표면을 바라보며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그저 흐느낄 뿐이구나. 이곳은 돌이킬 수 없는 우주이고, 나는 이윽고 유폐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그곳이 아메리카의 어느 곳인지, 아시아의 어느 곳인지, 그것은 언제나처럼 분명치 않다. 침몰한 범선들의 전설이 웅성대는 바다를 향해, 그러나 올리브 나무가 자라는 들판의 햇살과 풍요로운 저녁은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다. 휴스턴, 그리하여 올리브 과육마다 해안선의 풍요롭고 감미로운 바람은 불어오겠지. 휴스턴, 문득 그곳을 떠나려 마음먹던 어느 저녁이 생각나는구나. 그날, 지평선 너머로부터 바람은 당도했는지, 현관 벨을 맨 처음 누른 방문객이 누구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끝없이 타오르며 사라지던 노을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날을 떠올리면 휴스턴, 투명하게 담긴 올리브와 햇살이 쏟아지던 체크무늬 커튼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휴스턴, 들리는가? 나는 지금 그날의 식탁과 올리브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것의 부질없음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올리브에 대한 이야기만을 떠올리게 되는구나. 올리브를 올린 생선찜이나 올리브를 곁들인 와인을 앞에 두고, 그날의 우리는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했을 것이다. 폭죽을 터뜨리며 생일 축하 노래를 소리 높여 합창했겠지. 그래, 생일은 그런 날이다.? 휴스턴, 들리는가? 황혼의 해변으로 파도는 몰려오고 있는가? 아니면 수평선은 어둠으로 가득한가? 지표면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지로 가득하고, 나는 그곳이 아메리카의 어느 곳인지 아시아의 어느 곳인지 언제나처럼 알 수 없구나. 그저 나는 오래전의 생일 파티와, 그날의 평화롭던 노을과 올리브를 떠올릴 뿐이다. 아! 죽음을 목전에 두고 떠올리는 올리브라니. 휴스턴, 들리는가? 이제 졸음이 몰려온다. 체크무늬 커튼이 드리운 창문과, 창문을 관통하던 고요와, 출렁이던 노을을 바라보던 올리브는 여전히 아름답겠지. 그러나 그날의 그런 기억들은 오래지 않아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날은, 누군가의 생일이었지. 그리하여 나는 문득, 삶과 죽음을 중얼거려 본다. 휴스턴, 삶과 죽음은 이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구나.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 누군가의 생일처럼, 휴스턴. 휴스턴.
조동범 시인의 시집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이 시작시인선 0373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200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산문집 『보통의 식탁』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비평집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의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을 출간하였고 청마문학연구상, 딩아돌하작품상, 미네르바작품상, 김춘수시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시집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에서 시인은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세계에 존재하는 폐허와 같은 삶에 대해 성찰한다. 조동범 시에 등장하는 화자들은 어둠과 그늘, 분노와 슬픔, 회환과 절망에 물들어 있거나, 그렇게 물들어 있는 대상과 마주한다. 그러나 시의 화자들은 이러한 분위기에 이끌려 절망이나 불안의 감정 상태에 잠식되지 않고 오히려 평화로운 상태에서 대상을 관조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시인의 시 세계와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 가령 시인은 기쁨과 슬픔, 선과 악, 생과 사, 진실과 거짓 등 우리가 흔히 이분법적 잣대로 인식하는 관념들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적정한 거리 두기를 통해 대상을 관찰함으로써, 관습화된 인식으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한편 조동범의 시는 우리가 진리라고 믿어 왔던 테제를 전복시키면서 그 테제들이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한다. 해설을 쓴 권성훈 문학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그의 시는 “현실에서 미래를 견인하며 구현된 특별한 하나의 사건을 만나게 해 주”며, “혼돈의 문명과 획일적 개념으로부터 퇴행되어 버린 예지의 능력과 시인의 본래 가치를 복원시키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는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시 의식의 차원을 넘어 자신만의 고유한 시 의식을 가질 때, 비로소 시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이기도 하다. 요컨대 이번 시집은 해설의 말처럼 “주체적 시론을 묘사하는 ‘언어적 실행자’로서 생애 전반을 글쓰기에 바친 성과물”이라 볼 수 있다. 관습에 얽매인 ‘체제의 수행자’로서의 ‘시’가 아니라, 현실의 정서와 감각 등을 성찰하고 탐문하며 파고든 ‘시’라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추천사] 그의 시편들은 “저녁 식탁마다 평화로운 안부”가 “가득하고, 창문마다 저물녘의 일몰”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려” 하는 쪽과는 반대 방향으로 향해 있다. 일몰의 반대쪽은 지나온 역사를 지나가기 전에 예측하는 시그널인 것이다. 그는 이미 “예언서마다 죽음의 문장들은 눈물을 흘리지만, 저녁 식탁의 가족사는 행복했던 과거만을 기억”하고 있는 세계를 암시한 바 있다. 사건 속에서 폐기된 세계는 몰락한 것이며 “폐허 이전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러한 세계는 존속할 수 없다.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을 통해 건너가고 있을 뿐이다. -해설 중에서
[ⓒ LA코리아(www.lakorea.net),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ntact Us : 고객센터문의, Tel: 대표 201-674-5611
E-mail: lakorea77@gmail.com, 빠른카톡상담ID : newyorkkorea
미국최대 대표포털 LA코리아는 미국법률변호사고문 및 미국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컨텐츠 및 기사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