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딜쿠샤 -전장석 시집
(상상인 창작기획 시인선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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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석 시인이 마음에 그린 이 새로운 지도는 우리가 살아가는 삭막한 도시 서울을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지만, 이제 우리가 그의 시를 공들여 읽은 이상 마음에 한 번도 이상향을 품어보지 못한 채 사는 삶이란 또 어떤 의미가 있겠는지 묻지 않기도 지극히 어려우리라.
전장석은 어떤 것이 ‘위의를 띤 삶’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자꾸 헤매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이 사람 좋게 따뜻하기만 한 시집에 내가 진 탓일까. 자꾸 골목 안이 궁금해지는 것도 그 탓일까.
_ 장이지(시인) 해설 中에서
저자 약력
전장석
2011년 『시에』 등단
시집 『서울, 딜쿠샤』
2019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한국경제신문 재직
이메일 saka@hankyung.com
블로그 https://blog.naver.com/saakaakk
시인의 말
이것은
서울이라는 자궁 속에서 그린
무형의 지도다
손이 아니라 발로 더듬거린
어떤 거처에 대한
독백이다
시간의 금줄을 밟은
장소가 객사한
어느 날의 꿈속 이야기다
2021년 4월, 전장석
시집 속의 시 한 편
서울, 딜쿠샤
*
그가 왜 거기서 허름했는지, 묵시默示가 쥐들을 불러들이고
무너지지 않을 만큼의 폐허로 자라온 비문碑文
외벽 없는 바람에 안부를 의탁한 적 없다
그는 애초에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이었고
커다란 은행나무 때문이었고
벽안의 신혼부부가 살던 보금자리였으므로
이역에서 금맥을 찾던 알버트는
어느 날 낡은 타자기에 제 삶을 굴착하기 시작했다
바윗덩이 같은 어둠에 짓눌린 나라
캄캄한 갱도 속에서 길을 잃은 식민들
그의 타자기는 한동안 멈추지 않았고
외신이 전한 그날에야
그가 사라진 이유처럼 모든 일들이 명백해졌다
알버트 부부가 살던 붉은 벽돌집은
아내의 목에 걸어준 호박목걸이를 기억하듯
러크나우 궁전의 맹세를 떠올리듯
망각의 세월로 다져온 그들의 꿈을 오롯이
지켜온 이 땅의 또 다른 주인이 살고 있었고
몇 백 년 후의 일들을 예감했기 때문일까
장군이 심은 은행나무는 나날이 비장했다
노란 잎들이 마당에 암호처럼 쌓이자 알버트는
마침내 함성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낮달처럼, 장군의 눈썹은 높이 휘날리고
자신의 요람 밑으로 불쑥 선언서가 들어오자
울음을 멈추던 갓난아기는 어느새 노구가 되어
아버지의 유언장을 펼쳤다
알버트 테일러가 이 땅에 남긴 단 하나의 문장-
갑옷의 은행나무는 끊임없이 은행잎을 피우고
붉은 벽돌집엔 달빛이 은은하리라
양화진 묘지에 잠든 알버트 부부는 자신들의
비문에 새긴 마지막 문장을 고치고 있다
강변의 물살처럼 눈을 감을 수 없네
햇살이 너무 눈부셔 노래를 멈출 수가 없네
그의 헌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므로
차례
1부
BOOK아현 _ 019
만리동 책방 만유인력 _ 020
서울스퀘어 _ 022
가온다리 _ 024
개정판 강풀 만화거리 _ 026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팥빙수 카페 _ 028
겨울 무쇠막생고기집 _ 030
겨울, 남산길 _ 032
경리단길에서 식사하는 법 _ 034
경희궁을 산책하는 법 _ 036
광희문에서 출발한 순성巡城 놀이 _ 038
금고리 슈퍼 _ 040
긴고랑길 내려오며 _ 042
나폴레옹제과점 _ 044
발산이라는 동네 _ 046
낙원삘딍 _ 048
개운산이 어디 있지? _ 050
2부
산수갑산 아바이순대 _ 055
내시네 산 _ 056
눈 내리는 충무로 인쇄골목 _ 058
답십리 _ 060
대림동 중앙시장 돌아보기 _ 062
명동에서 줍줍 _ 064
손기정 공원의 모과는 오늘도 달린다 _ 066
모래내, 2015 _ 068
문래동에는 사나운 짐승들이 산다 _ 070
난곡동에서 죽음의 방식 _ 072
상계동올림픽 _ 074
성내동 오케이바둑학원 _ 076
성수동聖水洞, 그 세상의 바깥 _ 078
수색역을 지나며 _ 080
미아리텍사스 약사藥師 이미선 씨 _ 082
셔블 _ 084
사직공원 _ 086
3부
을지로 오구반점五九飯店 _ 091
신설동 골목 _ 092
아직도 봉천동에 사세요? _ 094
아현동 가구거리 3 _ 096
애오개 _ 098
아현역 나빌레라 갤러리 _ 100
연신내 _ 102
무계정사武溪精舍길을 걸으며 _ 104
오쇠동 풍경 _ 106
옥바라지 여관 골목 _ 108
왕십리 _ 110
창신동에서 있었던 일 _ 112
세검정洗劍亭에 대한 단상 _ 114
수진궁壽進宮길 걷다 _ 116
연희동 _ 118
이태원 약사略史 _ 120
정동 거리의 피아노 _ 122
4부
후암동 108계단 _ 127
종로5가 진미육회 3호집 _ 128
중곡동 가구거리 _ 130
신설동 붕어빵 가게 _ 132
아현동 재개발단지 _ 134
중림동 어시장 2 _ 136
창경궁 회화나무 _ 138
천호대교를 지날 때 _ 140
청계천 연가2 _ 142
카페 바람드리 _ 144
푸른 언덕靑坡에 올라 _ 146
합정동에서 누군가를 만난 적 있다 _ 148
서소문공원전傳 _ 150
밤섬栗島 되찾기 _ 152
흑석동 비사秘史 _ 154
서계동 _ 156
서울, 딜쿠샤 _ 158
해설 _ 장이지(시인) _ 163
마음의 지도, 골목 안 서울 답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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