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매도- 이인주 시집 (상상인 창작기획 시인선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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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주의 시세계를 이질적인 경향의 공존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안정감과 역동성의 두 계열, 곧 질서ㆍ균형ㆍ조화 등이 돋보이는 작품들과 해체ㆍ파격ㆍ실험 등이 돋보이는 작품들, 옥타비오 파스가 주장한 아날로지와 아이러니로 구분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이 경우에도 ‘경향’이란 시적 세계를 구성하고 표현하는 방식일 뿐이다. 이인주 시의 특이성은 세계의 비가시적인 영역을 포착하는 남다른 감각의 섬세함에 있다.
어떤 이들은 이인주의 시에서 불교적 세계관을 읽지만 나는 그녀의 시에서 ‘현실’에 대한 급진적인 도전, 즉 주체에 의해 구성된 복수의 현실을 시화詩化하려는 지극히 예술적인 충동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저 공중에는/엄살의 무게로 더 아픈 우리의 울음을 먹고 자라는/풍선 같은 주머니가 있다” 미지의, 알려지지 않은 감각과 정서를 창안하는 것이 좋은 작품의 기준이라면 이 시집에서 가장 뛰어난, 아름다운 시는 바로 이 작품이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_ 고봉준(문학평론가) 해설 中에서
저자 약력
이인주
경북 칠곡 출생
2003년 불교신문신춘문예 당선
2006년 『서정시학』신인상
시집 『초충도』발간(2017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백매도』
제15회 신라문학대상, 제8회 평사리문학대상
제2회 목포문학상 수상
대구 정화중학교, 정화여고 교사 역임
2021년 상상인 시집창작지원금 수혜
E-mail: karacas5434@hanmail.net
시인의 말
곡진한 서술방식과 단문의 직설이 압권인 문체를 부러워하였다.
내공이 만만치 않은, 치명적이어서 아름다운 정공법을 수공 전략으로 갖고 싶었다.
스스로의 몸을 통과하지 않은 서사를 말하지 않고는 생로병사의 어느 것에도 스밀 수 없다.
백병전으로 이어온 내 시의 현장에 물방울집 한 채를 짓고 싶었다.
2021년 1월, 이인주
시집 속의 시 한 편
백매도白梅圖
색 없는 빛이 가지 끝에 앉았습니다
단옷날 윤 고운 아침
유난히 바람을 많이 타 볼품없는 어린 매화나무 한 그루
당신이 내어준 품이었습니다
바람을 이겨내려면 잔가지를 더 분질러야 한단다
새들이 와서 똥을 눌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니
엄동설한 매운 겨울
바람 속에 뛰는 나의 혈기를 당신은 자꾸만 꺾었습니다
색을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가지 속에 꿈틀거리는 싹을
어떻게 밀어내야 하나요
어떤 몸짓은 땅으로 떨어졌고 어떤 몸짓은 허공을 딛고 올라갔습니다
말을 뱉어내지 못하게 한 당신의 묵비는
세상의 구덩이에 떨어진 걸음을 희디흰 빛으로 채워주셨습니다
그 안에 캄캄한 무채색의 울음도 잠겨 있다는 걸 짐작하게 되었을 무렵
북풍 속 환한 촉이 파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꽃눈 화사의 비밀을 온몸으로 겨워했던 날이었습니다
기나긴 칩거를 한눈에 알아본
탈태는 흰 겨울을 벗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봄의 잔가지에 올라앉아 물기를 다스리고 계셨습니다
모든 색들은 다 나무로 돌아온단다
오직 한 가지 궁극을 열어주신 당신 화첩이었습니다
점입가경이었습니다
차례
1부 어약영일도
어약영일도魚躍迎日圖 _ 019
물방울집 _ 020
활인검 _ 022
금슬 _ 024
대립되는 것들의 비늘에 대하여 _ 026
살바도르 달리 _ 028
King Pin _ 030
A에서 Z를 거쳐 B로 가라 _ 032
공기주머니는 울음을 감춘다 _ 034
오래된 사치 _ 036
금강金剛 _ 037
샤넬 넘버 B2 _ 038
청자상감모란문병 _ 040
2부 백매도
카마수트라 _ 045
백매도白梅圖 _ 046
프랑스 요리 _ 048
아프로디테 _ 050
강 _ 052
세컨드 라이프 _ 054
Fish Eye _ 055
모자를 쓴 사철나무 _ 056
클림트의 키스 _ 058
단검 1 _ 060
바오로의 편지 _ 062
투명 _ 064
복숭아나무십자가 _ 066
3부 흑매도
나만의 방 _ 071
흑매도黑梅圖 _ 072
카게무샤 _ 073
나무를 통찰하는 방식 _ 074
팔랑팔랑 _ 076
패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_ 078
늙은 베르테르 _ 080
여우를 위로함 _ 082
만파식적萬波息笛 _ 084
도돌이표 _ 086
디모클레스의 검 _ 088
크레바스 _ 090
종소리 _ 092
4부 굴업도
거짓말 탐지기 _ 097
굴업도 _ 098
탐하다 _ 099
페르세포네의 동굴 _ 100
매타자 _ 102
물음과 울음 사이 감람나무가 자란다 _ 104
철밥통 _ 106
돼지국밥을 먹다가 _ 108
이즈음 _ 110
대국 _ 111
반역자들 _ 112
취조 _ 114
서시도 아닌데 _ 116
해설 _ 고봉준(문학평론가) 119
세계에 대한 낯선 감각 ― 이인주의 시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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