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유성호는 1964년에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와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9년 대한매일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됐다. 2001년 대산창작기금과 제13회 김달진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교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한국현대시의 형상과 논리>,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등이 있다.
목차
책머리에
프롤로그 - 그를 향한 오래된 꿈_15
1. '시인 조용필' 이라는 뜻
2. 축제처럼, 율동처럼, 간절한 기도처럼
3. 눈물처럼 떠오르는, 강물처럼 흘러가버린
4. 꿈의 사제, 조용필
5. '단발머리' 소녀와 '촛불 같은' 여인
6.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7. 고독의 창법, 조용필
8. 트로트의 정점, 조용필
9. 시간의 사색가, 조용필
10. 조용필과 양인자
에필로그 - 조용필, 영원한 예술의 파문_163
책 속으로
누군가 춤과 춤꾼을 분리할 수 없다고 한 바 있거니와, 조용필 노래에서 어떻게 노랫말과 가수를 떼어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그의 노래의 작가(作家)가 작사가인지 작곡가인지 아니면 노래를 부르는 조용필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노래의 핵심이 가수의 해석력에서 갈라진다면, 조용필의 노래는 조용필 스스로의 해석과 창법과 표정과 시대의 반향이 그대로 하나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그는 언제나 자신의 노래의 최종 텍스트였고, 텍스트의 창안자로서 ‘시인 조용필’이라는 비유적 명명을 얻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 「‘시인 조용필’이라는 뜻」 중에서
지성과 행동의 결합을 추구했던 프랑스의 행동주의 소설가 앙드레 말로(Andr? Malraux)가 남겼다는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라는 유명한 말을 기억해본다. 조용필은 자신의 “긴긴 날의 꿈”을 넘어,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시간을 지나,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을 알까/나의 꿈을 알까”라면서 우리 시대의 우울하고도 아름답고도 절실한 꿈을 노래하였다. 그 과정에서 마침내 그 꿈을 천천히 닮아갔다. 그를 일러 ‘꿈의 사제’라고 불러도 좋을 까닭이 여기에 있다.
- 「꿈의 사제, 조용필」 중에서
우리가 뒤돌아볼 겨를 없이 질주해가는 시간의 아폴론적 활력은 문명과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장밋빛 미래에 대한 예견까지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남긴 어둑한 그늘도 만만치 않아서, 우리는 존재론적 소외와 상실을 목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디오니소스적 혜안을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 시간을 받아들이고 사유해간다. 그렇게 시간은 우리에게 수많은 ‘길’과 ‘세계’를 열어주고 흘러간다. 이때 조용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시간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자신만의 노래로 들려주는 사색가로 다가오는 것이다.
- 「시간의 사색가, 조용필」 중에서
조용필은 위안의 미학과 그 ‘너머(beyond)’를 상상하고 실천해온 우리 시대의 가왕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시대가 마주한 여러 역사적 사건들 앞에 누구보다도 상징적인 노래들을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생애가 시대의 거인으로서의 풍모를 드러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배려하고 또 이끌어갔다. 이는 우리가 끝내 보듬어야 할 조용필의 참된 의미일 것이다. 그는 가수의 ‘정점’이자 가수 ‘이상(以上)’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영원한 예술의 파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
출판사서평
〈‘가수 조용필’에 대한 평〉
조용필은 조용필이라는 지도에는 없는 바다이다. 그는 달빛의 유혹에 아름답게 흐느끼거나 눈부신 햇살에 이따금 뜨겁게 절규할 뿐이다.
- 구자형(작가, 방송인)
조용필을 왕으로 특대特待하는 명백한 이유는 “국내 대중음악 분야에서 가장 위, 꼭짓점에 위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가왕으로 존경받는 것에는 ‘가수로서의 천착’, 그 기본 숭배도 큰 몫을 한다. 또한 조용필 음악은 ‘한국 대중가요의 완결’일지 모른다.
- 임진모(음악평론가. 방송인)
조용필의 노래는 고독으로부터 나왔다. 릴케의 말처럼 위대한 예술은 고독에서 나오는 거라고 정의한다면 조용필의 고독은 현재 진행형으로, 그의 노래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유이다.
- 오광수(시인, 대중문화평론가)
조용필이 되기 위해 필요한 물건은 종이와 연필이면 되지만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자부심이 없다면 황금피아노를 가졌다 해도 결코 조용필이 될 수 없다.
- 한현우(조선일보 논설위원)
우리는 복고와 첨단을 아우르는 그의 노래를 통해 무섭게 변하는 세상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었다. 2017년에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택시운전사〉에 삽입된 노래 〈단발머리〉가 우리에게 새삼스럽게 그걸 알려 줬다. 그는 명실공히 한국 대중음악계의 신화다. 그 신화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그의 위대함이 있다.
- 장재선(시인, 문화일보 선임기자)
고등학교 시절, 노을지는 방천을 바라보며 교정에서 열창했던 〈창밖의 여자〉. 순간 뒤통수를 내리친 학생주임 선생님. 학생이 교정에서 유행가를 부른다고 혼을 냈더랬지. 혼나면서도 안으로 음미했던 가왕의 노래. 스스로를 관리하는 일이 얼마나 엄격한 일인지 지금 우리 가수를 통해 배우고 있네. 한 길을 올곧게 걷는 일은 얼마나 엄혹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 강태규(대중문화평론가)
어린 시절, 나의 언니는 가수 조용필을 좋아했다. 언니의 방으로 들어서면 온갖 잡지와 신문 등에서 오려낸 스타 조용필의 사진과 글이 빼곡히 도배되어 있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나였지만 1980년에 나온 조용필의 제1집 앨범 《창밖의 여자》에 수록된 표제곡 가사를 지금도 암기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언니 덕분이다. 그 가사의 심오한 뜻을, 사랑을 여덟 살의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에는 어불성설이지만 무언지 모르게 어린 가슴에도 이는 잔잔한 파문이 있었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차라리 차라리 그대의 흰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 그 노래를 열창하던 언니를 따라 나또한 얼마나 가성을 내질렀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벌써부터 딴따라 흉내낸다’ 고 아버지께 된통 혼나기도 했다. 아버지께 혼나도 언니의 팬심은 일편단심, 이불을 뒤집어쓰고도 이어졌다. 이불 속에서 불러대던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친구여〉, 〈허공〉의 추억이 지금도 새록새록하다. ...또한 사촌언니와 조용필 콘서트를 보러간다고 따라나섰던 언니가 대구역에서 아버지께 붙잡혀 집으로 돌아와서는 온종일 밥도 먹지 않고 펑펑 서럽게 울던 그 시절, 그 무엇이 우리의 영혼을 슬프도록 간절하게 했을까?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끝나지 않던 그 열병의 이유를…
한땀 한땀 조용필의 음악과 그 역사를 문학으로 기록한 이 책은 왜 조용필이라는 이름에는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꼭 붙여야하는지, 그 전율적인 뮤지션의 음악 세계를 ‘시인 조용필’로 명명한다.
- 손희(쿨투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