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천년의시작 신간 안내
장정자 유고 시집 내 입술 속 분홍으로 들어와
내 입술 속 분홍으로 들어와/ 장정자/ (주)천년의시작
B6(신사륙판)/ 양장/ 86쪽
2014년 5월 31일 발간/ 정가 12,000원
ISBN 978-89-6021-207-7 03810/ 바코드 9788960212077 03810
❚신간 소개 / 보도 자료 / 출판사 서평❚
(주)천년의 시작에서 장정자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이자 유고 시집인 『내 입술 속 분홍으로 들어와』가 2014년 5월 31일 발간되었다. 장정자 시인은 1944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하였으며, 2001년 『미네르바』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여, 시집으로 『뒤비지 뒤비지』와 유고 시집 『내 입술 속 분홍으로 들어와』를 상재하였다. 2014년 3월 5일 백혈병과 투병하다 타계하였다.
평소 시우(詩友)로 지내던 김경주 시인의 『내 입술 속 분홍으로 들어와』의 발문 가운데 일부를 옮겨 적는 것으로 신간 소개를 대신한다. “그녀의 시집은 불성(佛性)으로 가득하다. 불성은 돌봄과 돌아봄으로 둘레 치는 생명이다. 종교적 귀의를 벗어나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돌보려 했던 언어들은 세상의 작은 생명들의 미미한 흔적들이다. 자신에게서 상처가 되어 아물지 못했던 기미들을 그녀는 함부로 시로 데려오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은 나이가 들수록 낡고 오래되고 점점 머무르는 것들에게 눈이 가지만 불성에서 익힌 집착을 버리기 위해 늘 찰나의 덧없음과 돌아오는 헛것들로부터 마음을 비우고자 한다고 했다. 그것이 다행히 시가 되어 주면 참 고맙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것은 수많은 불자적 태도와는 다른 것이었다. 헛것은 때로 시가 되기도 하지만 시가 헛것을 가지고 우리 곁에 머무를 순 없기 때문이다. 이 시인의 시집에서 태동되는 생명과 연민의 순환은 아마도 그런 것들에게 피워 올리는 시인의 향 같은 것일 것이다.”
❚추천사❚
장정자 시인과의 남다른 시연(詩緣)을 지니고 있다. 상당 기간 나와 함께 시를 논한 인연을 가지고 있고, 그의 첫 시집의 표발(表跋)을 내가 썼으며 이번 유고 시집의 표발을 또한 내가 쓰고 있음이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이쪽과 저쪽을 시작하고 마감하는 주례(主禮)의 자리에 내가 서 있다. 생각하니 실로 아슬하고 쓸쓸하지 않을 수 없다. 본래 시의 행로가 그러함의 것이 아니겠는가.
그의 시에서도 그러함의 풍경들이 산견되어 있다. 마침 우리 집 석가헌(夕佳軒) 마당에도 한창인 박태기꽃이 장정자 유고 시집 첫 머리에 시로 만발해 있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그 시를 옮겨 적는 것으로 표발을 대신한다.
“박태기꽃 속에는 햇빛들이 쫑알쫑알 전생처럼 모여 있다// 부뚜막 얼쩡거리는 강아지 꼬랑지 걷어차는 내가 있다// 입이 댓 발 빠진 며느리가 궁시렁궁시렁 들어 있다// 박태기꽃 속에는 하루 종일 입이 궁금한 시어머니가 있다// 수수꽃다리 하얀 별꽃이 얼핏 숨었다 보였다 한다”
―정진규(시인)
장정자 선생의 유고 시집 원고를 읽다가 문득 깨달았다. 시가 왜 필생의 업인지에 대해 말이다. 그러나 그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가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다만 이런 시 앞에서 나는 내 생 전체가 무람해졌다. “그날 까마귀는 목구멍 깊숙이 울고 한 번 더 울었다 밤을 까맣게 앉아서 새운 돌탑 그 웅그린 색과 캭 뱉는 막막함이 길몽과 흉몽이겠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있는 새까만 새// 나는 바퀴에 깔려 죽은 잠자리와 메뚜기를 풀숲에 놓아준다 땅속 깊이 묻혔던 돌들을 꺼내어 탑을 쌓아 눈(目)과 지느러미를 달아 준 나무 지팡이를 짚고 돌탑을 돈다// (…중략…) // 언제쯤 그 유계의 동공에 들어가 그 검은 곡비의 내력을 까마귀의 언어로 울 수 있는지// 돌탑을 돈다”(「돌탑」). 어쩌면 장정자 선생은 생전에 이미 저 『유마경』과 『금강경』을 거쳐 달마의 「무심론(無心論)」에 다다랐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평생 마음을 다해 시를 지어 얻은 바는 마음 없이 돌탑을 도는 일이었으니, 선생은 이룬 바 없이 모든 것을 이루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알겠는가. 다만 장정자 선생의 시를 읽고 다시 읽을 따름이다.
―채상우(시인)
그녀의 시집은 불성(佛性)으로 가득하다. 불성은 돌봄과 돌아봄으로 둘레 치는 생명이다. 종교적 귀의를 벗어나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돌보려 했던 언어들은 세상의 작은 생명들의 미미한 흔적들이다. 자신에게서 상처가 되어 아물지 못했던 기미들을 그녀는 함부로 시로 데려오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은 나이가 들수록 낡고 오래되고 점점 머무르는 것들에게 눈이 가지만 불성에서 익힌 집착을 버리기 위해 늘 찰나의 덧없음과 돌아오는 헛것들로부터 마음을 비우고자 한다고 했다. 그것이 다행히 시가 되어 주면 참 고맙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것은 수많은 불자적 태도와는 다른 것이었다. 헛것은 때로 시가 되기도 하지만 시가 헛것을 가지고 우리 곁에 머무를 순 없기 때문이다. 이 시인의 시집에서 태동되는 생명과 연민의 순환은 아마도 그런 것들에게 피워 올리는 시인의 향 같은 것일 것이다.
―김경주(시인, 시집 발문 중에서)
❚저자 약력❚
북쪽 별이 뜨고 북쪽 바람에 한쪽 목이 기울어진 기린
외로워서 서로 목을 꼬고 있다
내 목은 서쪽에서 동쪽 삼림지로 건너간다
외로울 땐 목을 잘라 하얀 젖을 먹는다
잘린 목 위에 누군가 빨갛게 앉아 울고 있다
난생도 뿌리도 배 속도 아닌 목에서 태어나
뿌리처럼 분재가 되어 유목이 되는 삶
기린이 눈을 반쯤 감은 채 분재 위 사막을 비틀거리며 건너간다
깡마른 꽃기린이 빨갛게 피우는 꽃
제 사방무늬 빠져나와 그물 밖 서성일 때
절단된 우린 한 자매같이 한꺼번에 꽃 피운다
가시투성이 짐승이 피우는 빨간 꽃
내 목에 앉은 그녀 동쪽 마다가스카르로 건너간다
새
새 한 마리 누워 있다 고개를 옆으로 길게 누이고 있다 느티나무 밑에 놓아주고 싶었지만 나는 지금 매미의 주검을 거두는 중이다
한 바퀴 돌고 오니 아직도 거기 있다 머리가 검고 흰 가슴 털을 가졌다 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방금 죽은 것처럼 부드럽다 긴 꼬리를 가진 직박구리나 비둘기 같다
한 바퀴 또 돌고 오니 아직 그대로다 눈을 보려다 더 멀리 돌아서 간다 운동장엔 열댓 마리의 비둘기가 앉아 있다 직박구리는 순식간을 날아다녀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한 바퀴 더 돌고 왔다 새의 눈을 보고 싶었다 이렇게 크고 온전한 새의 주검은 처음이다 머리는 검고 목덜미에 흰 목도리 털을 둘렀다 비둘기보다 작고 가슴과 등엔 흰 털이 있고 긴 꼬리는 연회색이다 눈을 뜨고 있다
다섯 바퀴를 돌아오니 새에게 개미가 조금 붙어 있다
다음 날, 누군가 새를 느티나무 밑에 옮겨 놓았다 개미 떼에게 뜯긴 흰 가슴 털 사이로 가지런한 두 발이 보인다 분홍색이다 곧 무너질 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