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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시
포도알 속에도 씨가 있다
이선영
이 작은 포도알 속에도몇 개의 딱딱한 씨가 들어 있다
이 물컹한 포도알 속에도무너질 수 없는 어떤 결심인 양 씨가 들어있다
입안에서 터지는 이 부드러운 포도알 속에도그냥은 삼킬 수 없는 응어리라는 듯 씨가 맺혀 있다
이 달콤한 포도알을 굴리거나 누르며 지그시 씹을 때도절로 생겨나 거저 여물 리 있겠느냐는 듯난자이며 정자인 씨가 혀에 걸린다
손길만 닿으면 건들건들 떨어져내리는 포도알 하나에도돌부리처럼 걸려 넘어지는 옥니박이 씨가 숨어 있구나!
포도알은 껍질이 벗겨지는 순간 깊고 아득한 목구멍 속으로 사라지지만결코 그게 다가 아니라며 제 생의 응집들을 뱉어놓는다
포도알은 포도씨를 꼭 물고 있었다포도씨는 포도알이 남기는 미래다
--------------------------다닥다닥 열린 포도송이, 그 속에 하나씩 박혀있는 씨앗을 우리는 무심코 뱉어버린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 '포도알이 포도씨를 꼭 물고 있'는 눈물겨운 정황을 우리는 마주한다. 그 작은 포도알속에서도 씨앗이라는 아픈 이름으로 견디어내며 여물고 있었다니! 이 씨앗의 견딤, 그리고 무른 살을 다 허물고 나서도 마지막까지 남은 채, 미래의 결정이 된 것이다. 생명의 경이와 존재의 감격적인 실상의 세계가 이렇게 선연하기만 하다. 이선영 시인은 서울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오, 가엾은 비눗갑들><글자 속에 나를 구겨넣는다><평범에 바치다><일찍 늙으매 꽃꿈><포도알이 남기는 미래>등이 있으며, 현 이화여대에 출강.<신지혜. 시인>
<신지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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