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오된 새
구재기
수천 킬로 날아온 새가대열에서 낙오가 되면텃새처럼 계절을 모르게 된다
앞장 서 날아간허공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고
생각보다 일찍 지나가버린 바람처럼하루에도 몇 번씩 모습을 바꾸는 구름처럼안간 힘을 다 쏟아내도몸무게의 변함은 없다군계일학을 꿈꾸어 보아도누구 하나 쉽게 눈을 돌려주지 않는다
살아가는 게 이다지도절해고도인 줄 알았더라면가다가 쓰러져도 날개를 접지 말 것을
물속에 두 다리를 담그고두 날개로 물너울을 일으켜 보아도몸뚱이 어느 곳 한 곳어디 물 한 방울 젖어들지 않는다
메마르고 굳은 몸 하나로온갖 깃에 칼날을 꽂아놓고속 터지게 살아갈 날들이자꾸만 쌓여갈 뿐이다내년쯤 다시 대열에 끼어든다 하여도알아볼 식솔이나 살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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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누구나 할 것 없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 시대, 하지만 그 생존의 무리 속에서 낙오된 자의 마음은 어떠할 것인가. 무력감과 뒤처진 자의 끝없는 비애감, 암흑의 적막, 생의 잿빛 슬픔이 온통 밀물처럼 차오를 것이다. ‘절해고도’에 한 번도 서보지 않은 이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무서운 고립. 이 시는 그 낙오된 자의 텅 빈 아픔을 따스하게 어루만져준다.
구재기 시인은 충남 서천 출생. 1978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살아갈 이유에 대하여> <천방산에 오르다가> <강물> <가끔은 흔들리며 살고 싶다>가 있으며, 충청남도문화상, 시예술상 본상, 대한민국향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신지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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