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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시
〈제8회 미당문학상 수상작〉 가을 송찬호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 가웃은 된다고 빙그레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 않은 꼬투리들이 따닥 따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낱을 있는 힘껏 멀리 쏘아 보내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한 가슴만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 이제 수확의 계절이다. 자연 만물의 넉넉한 수확물에 큰 절하게 되는 계절, 대자연의 질서정연한 순환고리속에서 우리는 좀더 자신을 깊이 성찰 하기도 한다. 첨단을 다투는 경쟁 속도가 존재하지 않는, 청정 무공해 지역의 농촌 정경이다. 콩밭에서 잘 익은 콩들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저절로 튄다. 그 자연의 생생한 숨결과 역동적인 사물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날아가는 콩이나 장끼,멧돼지, 콩밭주인, 콩새, 시적 화자, 어느 것 하나 주인공 아닌 것이 없다. 바로 우리의 생래적 마음의 고향이 여전히 남아있는 서정적 정황인 것이다.이 자연의 섭리안에서 또다시 가을을 맞는 우리, 역시 어떤 수확물을 거두게 될 것인가. 송찬호 시인은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경북대 독문과 졸업. 1987년 [우리시대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붉은 눈, 동백><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10년 동안의 빈 의자>등이 있다. 김수영 문학상,동서문학상,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신지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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