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를 위하여
이건청
여기 와서 시력을 찾는다여기 와서 청력을 회복한다잘 보인다 아주 잘 들린다.고추잠자리까지, 풀메뚜기까지다 보인다. 아주 잘 보인다. 풍문이 아니라, 설화가 아니라만져진다, 손끝에 닿는다.6천여 년 전, 포경선을 타고바다로 나아간 사람들,작살을 던져 거경(巨鯨)을 사냥한,방책을 만들어 가축을 기른,종교의례를 이끈,이 땅의 사람들이 살아 있는 숨결로온다, 와서 손을 잡는다.피가 도는 손으로 손을 덥석 잡는다.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한다.어서 오라고, 반갑다고가슴으로 끌어안는다.한반도 역사의 처음이선연한 햇살 속에 열린다.여기가 처음부터 복판이었다고,가슴 펴고 세계로 가는 출발지였다고,반구대 암각화가 일러주고 있다.신령스런 벼랑이 일러주고 있다.눈이 밝아진다.귀가 맑아진다.잘 보인다. 아주 잘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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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유적 문화재로 선사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의 국보, 제285호이다. 누천년 시간이 흘렀어도 그 시대적 삶의 모습이 그대로 암각화된 것으로, 시인은 선조들의 시간과 생명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생생하게 복원하고 있다. 시인의 개화된 시각과 청각의 목전에 날것으로 불려나온 반구대 암각화의 ‘신령한’ 비경이 현재와 먼 과거의 구분을 무화시키고 있다.
이건청 시인은 경기도 이천 출생. 한양대학교 국문과 졸업.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1967년 『한국일보』신춘문예, 1968년에「손금」, 1969년에「舊市街의 밤」, 1970년에「舊約」이《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등단. 시집으로 <이건청 시집><목마른 자는 잠들고><망초꽃 하나><청동시대를 위하여><하이에나><코뿔소를 찾아서><석탄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푸른 말들에 대한 기억><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반구대 암각화 앞에서> 시선집 <움직이는 산>외 저서 다수. 현재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양대 명예교수.
신지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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