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받으러 가는 봄
이화은
물병아리 한 마리가 딱, 반 되짜리 주전자 뚜껑만한 고것이겁없이 봄강을 끌고 가네꼬리물살이풍경화 속 원근법 같기도 하고후라쉬 비추고 가는 외로운 밤길 같기도 한데고 뚜껑이 잠시 물속으로 잠수라도 해버리면강은덩치 큰 아이처럼 철없이 길을 쏟아버리고 마는데반 되가턱없이 말술이 되기도 한다는 걸,오래된 풍경화 속 원, 근, 어디쯤에후라쉬 불빛 가까이 들이대고 보면 거기쭈그러진 아버지 반되짜리 주전자꽥꽥 혼자서 울고 있다네술 받으러 가는 아이처럼 물병아리달그락 달그락추억 쪽으로 너무 멀리 가지 말거라봄은 겉 늙어버린 덩치만 큰 아이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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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3월의 봄을 연다. 작은 물병아리 한 마리가 바로 올봄의 전령사다. 시인은 물병아리가 술 주전자를 들고 아버지 심부름 가는 모습으로 비유한다. 봄강을 끌고가는 작은 물병아리의 앙증맞고 경쾌한 모습으로 인해 강의 원근법이, 그리고 꼬리물살이 번지는 생생한 풍경이 눈을 시원하게 씻겨주지 않는가. 이제 봄이다. 저 영상에 시선을 빼앗기며 겨우내 어두웠던 휘장을 와짝 걷어버릴 수밖에.
이화은 시인은 경북 경산 출생. 1991년『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이 시대의 이별법><나 없는 내 방에 전화를 건다><절정을 복사하다>등이 있다. 시와시학상 젊은 시인상을 수상했다. 신지혜<시인>
신지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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