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선경문학상 이돈형 시인 수상
■ 주최 선경문학상 운영위원회 ‧ 상상인
■ 후원 선경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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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선경문학상에는 이돈형 시인의 「잘디잘아서」외 4편이 선정되었다. 심사를 맡은 김기택 시인과 황정산 평론가는 이돈형 시인의 시들은 기발하거나 기이한 언어가 아닌 평범한 일상적 어휘로 선명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특별한 언어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그의 시는 완성도 높은 언어의 형식미와 함께 삶에 대한 통찰과 사유의 깊이를 동시에 보여 준다고 하였다. 특히 시집 한 권 분량의 모든 시가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단 한 편의 태작도 지적해 낼 수 없을 만큼 모두 높은 완성도를 갖췄다고 심사 배경을 밝혔다.
시상식은 12월 3일(토) 선경산업 강당에서 있을 예정이다. 상금은 일천만 원이며 수상시집이 별도로 발간되며 상금 등 부대비용은 선경산업에서 후원을 한다.
수상작과 수상소감 그리고 심사평은 2023년 1월『 상상인』 제5호에 소개될 예정이며 이번 선경문학상 수상자인 이돈형 시인은 2012년 계간『 애지』로 등단하여, 시집 『우리는 낄낄거리다가』 『뒤돌아보는 사람은 모두 지나온 사람』을 발간하였다. 2018년 김만중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지원금 수혜를 받았다. 2019년 애지 작품상, 2022년 제3회 선경문학상을 받는다.
▷심사위원 _ 김기택(시인) 황정산(평론가)
선경문학상은 선경문학상 운영위원회와 『상상인』이 주최하고 선경산업이 후원한다.
-2022년 12월 3일 선경산업 강당에서 시상식 개최
(선경산업, 선경문학상 운영위원회, 상상인이 함께 한다.)
제3회 선경문학상 수상작
잘디잘아서
잘디잘은 돌멩이처럼 쉽게 구를 수 있다면 부르르 떨며 부서질 수 있다면
아무렇게 뒹굴다 부딪치거나 터져도 웃는 돌멩이처럼 근근이 소멸에 가까워진 돌멩이처럼
닮고 싶다
그런 돌멩이 옆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보면 쓸쓸함도 따뜻하다고 돌멩이에 코를 대면 가슴을 쓸어내린 냄새가 난다고
누군가에 발길질하고 싶을 때 그 냄새를 맡으며 부서질 대로 부서져 잘디잘은 사람이 될 수 있겠다고
잘아서 울음도 쉽게 망가지고 식은땀도 넉넉하게 흐르고 어쩌다 뜨거워져도 금세 식어버리는
아주 잘디잘아서 어떤 영혼에도 쉽게 상하는
가끔은 제 돌멩이에 뒤통수를 맞고도 배시시 웃는 돌멩이처럼
아껴둔 쓸쓸함을 아는 돌멩이처럼
의자
헌 집 같은 의자에 앉아
헌 집에 든 바람 같은 아버지가 담배를 태우신다
어쩌다
또 한대 태우신다
공복에 태우는 담배 맛은 정든 소멸처럼 애태움을 가시게 해
내뿜는 연기가 생의 뒷주머니 같은 골목에 퍼지다 종일 담벼락을 옮겨 다니며 중얼거린 의자의 그림자에 가 앉는다
어쩌다 하루란 게 있어
의자는 허虛의 혈穴을 찾아 하루치 삭고 아버지는 하루치 삶을 개어놓는다
어둑한 골목의 기색을 덮고 있는 두 그림자 위로 석양이 쇳물처럼 쏟아진다 아무데서나 문드러지기 좋은 저녁
아버지 의자에 앉아 소멸만 내뿜는다
내뿜어도 자꾸 생을 일러바치듯 달라붙는 정든 소멸은 무얼까?
아버지, 담배 맛이 그리 좋아요?
죽을 만큼
사랑을 해야겠어
태어나서 아직 죽어보지 못했으니 죽을 만큼 사랑을 해야겠어
생각난다
손목을 그을 때 반짝이던 유리조각이, 반짝여 손에 힘이 더 들어가는데 그때 왜 하필 죽을 만큼이 되돌아왔는지
누가 그 손을 덥석 잡았다면 오랫동안 죽을 만큼 살아가겠지
그날 이후
집 없는 마음이 죽을까 조각만 보면 집어던졌어 집이 조각조각 부서져도 마음만 들여다보았어
죽었을까
나무나무나무를 말하는 내가 나무 안에 들어선 적 있나
공기공기공기를 말하는 내가 공기 밖에 나가본 적 있나
어디서 오는 사랑이 아니라 자꾸 어딘가로 가는 사랑 말이야
훗날이 입을 막고 모로 눕는다 해도 모른 척하고 약산에 진달래꽃 필 때까지* 사랑을 해야겠어
죽을 만큼이란 게 알고 보면 순식간에 시들해지거든
* 김소월의 진달래꽃 차용
국수
국수를 삶는다
긴 장마에 벽지가 뜨고 곰팡이 냄새는 내가 세상에 매달려 내는 냄새처럼 뭉쳐있다
새들의 좁은 입으로 저녁의 외벽이 물려있고 사람들은 하루치 몸에 밴 곰팡내를 털며 돌아온다
삶는 냄새엔 사려가 있어 친근하다
끓어오를 때 찬물을 붓듯 허기를 끼얹고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창문을 열어 냄새를 풍겨볼까
핏물 빠진 실핏줄처럼 면발이 풀어질 때까지
풀어주는 게 아니라 풀어지는 게 방생이 아닐까 국수를 저으며 생각한다
저을수록 한 방향이 적막해지고 갓 삶아낸 면을 헹구다 보면 손 씻는 삶을 어르는 소리가 들려
안간힘과 안간힘이 불다가 한 덩이가 될 때까지 삶은 국수를 냉장고에 넣는다
무례하게 불은 국수가 좋다
어깨를 맞대고
모임에 갔었지
오늘은 모임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어 모여들고
어깨를 맞대고 이처럼 다정한 어깨는 없을 거야 어깨를 맞대고 이처럼 쉽게 조용해지는 어깨는 없을 거야 되돌아갈 어깨를 맞대고
네 졸음이 내 졸음이 될 때까지 어깨를 맞대고 들어오는 사람마다 옆으로 와 옆으로 와 얼굴을 맞대고
높낮이 없는 어깨를 봐 어쩜 이렇게 인정하는 얼굴들일까
알게 모르게 있으면 돼 어깨를 맞대고 누군가 한발 두발 뒤로 물러나 혼자 노는 일에 열중해도 어깨를 맞대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견해들
오랜만에 모였으니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어 손을 들거나 박수를 쳐야겠지 할 말 없는 눈은 지그시 감고
대책 없이
착한 어깨를 맞대고
수상소감
사람 人字를 좋아한다. 언제부턴가 人字의 좌변과 우변 중에서 우변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좌변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다 쓰러지는 사람이겠고 우변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위해 노력하다 쓰러지는 사람을 받아주는 사람이겠다. 기왕이변 우변이 나을 듯싶었다. 좌변이든 우변이든 같은 사람이니 누가 기대든 누가 기댐을 받아주든 별반 차이 없겠지만 내가 오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건 세상이 나를 그만큼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기댐을 받아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으로 사는 일이 평범함이겠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사람’을 쥐려 할수록 소소한 기분에도 쉽게 넘어져 한때는 ‘내려놓음’이 화두였는데 요즘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사람’이 화두가 되었다. 사람 속의 사람이 되고 싶은 까닭이다.
늘 사는 일이 변방의 일이었다. 변방에서는 뭘 해도 소문나지 않아 쓰다듬을 것도 많고 안아볼 것도 많다. 그렇게 변방을 끌어안고 지내다 보니 이제는 변방이 중심이 된 것 같다. 시도 마찬가지다. 쓰다 보니 변방이고 쓰고 보니 변방이었다. 그래도 쓸 때만큼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는 편이다. 사람을 올려다보면서, 사람을 들여다보면서 이 정든 변방에서 더 낯선 변방으로 가보기 위해 쓴다. 한편으로는 즐거운 일이다. 이 변방의 사람들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기보다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냄새가 좋다. 웃는 냄새 우는 냄새 심지어는 울다 웃는 냄새도 있다. 정겨운 냄새들이다. 그 냄새들을 하나하나 맡다 보면 한 사내가 저물어가는 줄도 모르고 변방놀이에 빠져들게 된다.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누구나 그렇겠지만 기쁨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뜀의 높이가 얼마나 높았는지 변방의 천장이 내려앉을 뻔하였다. 감사하다. 감사하다는 말 외에 더 할 말이 없는데 자꾸 말하게 된다. 덜 떨어진 놈이라 해도 괜찮다. 덜 떨어졌으니 앞으로 ‘사람’으로 떨어질 날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겠는가. 그 떨어짐의 과정도 나는 즐길 것이다.
부족한 시를 읽어주심에, 손들어 주심에 심사위원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격려임을 잘 안다. 앞으로 살아있어서 쓰는 것이 아닌 쓰기 위해 살아있겠다.
오늘도 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친다. 좌변이든 우변이든 사람으로서 시를 쓰기 위해!
심사평
이번 선경문학상에는 200여 명이나 되는 많은 시인들이 응모했다. 1차 예심위원 4명이 원고를 검토하여 26명의 작품을 골라 2차 예심에 올렸고, 2차 예심위원 8명이 이 중 9편을 선정하여 최종 본심에 올렸다. 응모자가 많았고 심사위원들이 시집 한 권 분량의 작품들을 모두 읽어야 하는 수고로운 작업이었지만 그만큼 선경문학상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 본심 심사위원으로서 뿌듯한 마음 감출 수 없었다.
본심은 심사위원 2명이 응모자의 이름이 지워지고 번호로만 표기된 파일을 미리 받아 각자 검토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응모자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오직 작품만으로 평가하기 위해서였다. 그 후 한 자리에서 만나 자신이 선택한 시인을 두고 협의를 했다. 서로 최고점을 준 시인이 일치하지 않아 합의하는 데 난항을 겪었다. 한 심사위원은 실험성에 또 다른 심사위원은 완성도에 더 방점을 두고 점수를 주었다. 언어의 새로움을 추구하여 시의 또 다른 세계를 열어가는 실험 정신도 훌륭한 시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지만, 잘 다듬어진 말의 미학을 살려 시적 사유와 정서를 섬세하게 형상화하는 것 역시 좋은 시가 가져야 할 중요한 요건이다. 오랜 토의를 통해 결국 후자의 작품을 선정하기로 어렵게 합의했다. 신인상이 아닌 작품상이므로 작품의 완성도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수상자로 선정된 이돈형 시인의 작품들은 작품 수준이 모두 고르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모든 시가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단 한 편의 태작도 지적해 낼 수 없을 만큼 모두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는 시인이 오랜 시작 수련 기간을 거쳤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수련을 통해 그가 만들어 낸 언어는 예사롭지가 않다. 그는 기발하거나 기이한 언어가 아닌 평범한 일상적 어휘들로 선명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특별한 언어감각을 가지고 있다. 가령 그의 시 중 “헌 집 같은 의자에 앉아/ 헌 집에 든 바람 같은 아버지가 담배를 태우신다”(「의자」), “잘디잘은 돌멩이처럼 쉽게 구를 수 있다면 부르르 떨며 부서질 수 있다면”(「잘디잘은」) 이런 구절들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시를 높게 평가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아이러니와 페이소스를 아주 잘 표현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은 모임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어 모여들고”(「어깨를 맞대고」) 같은 구절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그의 시는 완성도 높은 언어의 형식미와 함께 삶에 대한 통찰과 사유의 깊이를 동시에 보여 준다.
이돈형 시인의 선경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아깝게 탈락한 몇 분의 시인들에게도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
심사위원 _ 김기택(시인) 황정산(평론가)
이돈형 _
2012년 계간『 애지』로 등단하여, 시집 『우리는 낄낄거리다가』 『뒤돌아보는 사람은 모두 지나온 사람』을 발간하였다. 2018년 김만중문학상,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지원금 수혜, 2019년 애지 작품상, 2022년 제3회 선경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상식 _ 2022년 12월 3일(오후3시)
장소 _ 선경산업 강당(인천광역시 계양구 서운산단로3길 1(서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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