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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나비야 날아라』는 6·25전쟁의 한복판에서 가족을 잃고도 살아남아야 했던 한 아이, 남옥의 삶을 따라가는 동화집이다. 이야기는 팔순이 된 고모가 조카에게 오래 묻어 두었던 과거를 들려주는 데서 시작된다. 고모의 가슴에 새겨진 나비, 한 집안에 오래 남아 있던 침묵, 제사 때마다 가라앉던 어른들의 얼굴. 흩어져 있던 기억의 조각들은 남옥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일곱 살 남옥은 민들레가 피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달아실마을의 아이였다. “나비야 나비야” 노래를 바꿔 부르고, 글자를 배우기 싫어 투정을 부리던 평범한 아이였다. 그러나 전쟁은 아이의 세계를 단숨에 찢어 놓는다. 낮과 밤이 서로 다른 편이 되고, 이념이 사람의 이름보다 앞서는 세상에서 남옥의 가족은 잔혹한 비극을 겪는다. 부모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남옥은 몸과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입은 채 살아남는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그 비극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작가는 죽음과 상처를 말하되, 끝내 삶의 세부를 놓지 않는다. 민들레, 토하젓, 감자, 우물, 조카의 울음, ‘성님’의 손길 같은 작고 구체적인 장면들이 이야기 곳곳에 놓여 있다. 그래서 『나비야 날아라』의 전쟁은 교과서 속 사건을 넘어 밥상과 골목과 아이의 노래 속으로 들어온 현실이 된다. 독자는 한 아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리고 살아남는다는 일이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되는 고통인지를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이 책에서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나비'는 매우 다층적인 상징을 내포한다. 애벌레가 네 번의 고통스러운 잠과 탈피를 거쳐야만 비로소 넓은 하늘을 품을 수 있듯, 남옥 역시 기나긴 침묵과 고통의 세월을 통과해야만 했다. 가슴에 새겨진 흉터라는 기표는 오랜 세월 공포와 한을 가리키는 기의로 작용했지만, 팔순이 된 남옥이 마침내 오빠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원망을 내려놓는 순간 그 의미는 역전된다. 상처는 비로소 과거의 억압에서 벗어난 자유와 해방으로 전환되며 기표와 기의의 새로운 합일을 이룬다. 마음의 껍질을 깨고 일어선 그녀의 가슴에서 눈부신 나비 떼가 날아오르는 환상적인 결말은, 평생을 짓눌러온 역사의 트라우마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시각적으로 훌륭하게 구현한다. 남옥은 오랫동안 두려움과 원망 속에 갇혀 있었지만,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조금씩 자기 삶을 되찾기 시작한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 기억하는 일, 그리고 그 기억을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일이 이 책의 중심에 있다.
『나비야 날아라』는 어린이에게는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청소년에게는 역사 속 개인의 아픔을, 어른 독자에게는 가족의 침묵 속에 묻혀 있던 진실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특히 실제 가족사의 결을 품은 듯한 서술은 이야기에 묵직한 진정성을 더한다. 이 책은 묻는다. 전쟁은 끝났는가.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는가. 그리고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귀 기울여 듣고 있는가.
이 책은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무고한 민간인들을 위한 진혼곡이자,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져야 했던 고통의 무게를 덜어주는 따뜻한 위로의 문학이다. 끝내 자신만의 번데기를 깨고 기꺼이 비상을 선택한 남옥의 여정은, 오늘날 각자의 흉터와 껍질 속에 웅크린 채 살아가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먹먹한 치유와 희망의 날갯짓으로 가슴 깊이 다가갈 것이다. 슬프지만 무너지지 않고, 아프지만 끝내 날아오르는 이야기인 『나비야 날아라』는 한 아이의 가슴에 새겨진 나비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깊은 상처를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다. 초등 고학년부터 청소년, 가족과 함께 역사 동화를 읽고 싶은 독자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작가의 말

만나는 글
유채 꽃밭이다. 아니 노랑 물결이다. 노랑나비 떼다. 꽃구경 나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노랑 물결 사이에서 사진을 찍는다. 내일이면 고인돌 봄꽃 축제를 시작한단다. 나는 고모와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앉아서 들판 너머로 보이는 노랑 유채꽃 물결을 보고 있다.
“웃음을 잃은 그때부터 삶은 내 것이 아니었다.”
고모는 씁쓸하게 웃었다.
“난 그게 늘 궁금했어요. 고모 가슴의 나비. 왜 새겼을까?”
“어디 이것만 있다냐? 안 죽고 살아난 것이 참 요상하다.”
고모는 이내 한숨을 푸욱 쉬었다.
“한숨 한 번에 백 개의 행운이 달아난대. 그러니 한숨 쉬지 말고 나에게 이야기해 봐.”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나의 말에도 고모는 말 대신 한숨을 또 쉬었다. 작은 몸 어디에 그리 깊은 한숨이 있었을까?
“고모, 이제는 털어내야 하지 않을까?”
팔순이 된 고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고 싶어 한 말이다. 너무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있는 것 같아 내 마음도 무겁기 때문이다.
“그것이 맘대로 된다냐? 내가 죽으면이나 모를까”
나비의 알보다 작은 몸에 새겨진 큰 짐을 벗을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안다.
“어떻게 하면 풀리겠어?”
나는 고모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 <만나는 글> 부분
동화 속으로 
산이 디귿자 모양으로 둘러싼 달아실마을.
그 안쪽, 동네에서 아주 작은 오두막이 있다. 오두막으로 들어가는 싸리문 아래에는 민들레가 노랗게 피었다. 마을 입구부터 이어져 온 민들레는 오두막 담까지 번져 있다. 민들레 위로 나비들이 스치듯 날아다니며 춤을 춘다. -「싸리문 밖의 민들레」 부분
6월 말, 하지가 지난 들판은 질리도록 푸르고 아름다웠다. 막 땅에 뿌리 내리고 자라기 시작한 볏논에 하얀 두루미가 살금살금 먹이를 찾고 있다. 들판은 마냥 푸르고 평온하다. -「낮 사람과 밤 사람」 부분
전쟁이 나고 해가 바뀌어도 사람들은 농사를 지었다. 초록으로 무성하던 들판은 서서히 노란빛으로 물들어갔다.
남옥은 시간이 날 때마다 싸리문 밖에 나와 앉아 흙에 그림을 그린다. 성님에게 배웠던 글자를 흙에 적어 보기도 한다. 오늘도 해거름이 지고 하늘이 거무스름하게 물들도록 안 오는 것을 보니 성님과 조카는 안 올 모양이다. -「나비가 새겨지던 밤」 부분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남옥은 점점 마음이 불안해지며 몸을 바짝 웅크렸다. 달구지가 움직일 때마다 상처가 터질 듯 아프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만큼 아팠다. 얼마나 가슴을 부여잡고 웅크렸는지 손이 촉촉했다. 보니 가슴 상처에서 피가 났다. 얼른 옷자락으로 나락 가마니에 묻지 않도록 했다.
-「조카를 만나다」 부분
달아실에서 잘 때처럼 오빠와 성님 사이에 누워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대로 영원히 편안하고 싶었다. 그 순간만큼은 흉터에 대한 생각도 없었다. 참 오랜만에 남옥은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큰오빠」 부분
나비 두 마리가 불빛이 있는 곳을 향해 가다가 오두막집에 머문다. 얼핏 나비에게서 어머니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 모습이 보인다. 민들레꽃을 보고 있던 남옥은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멈추며 중얼거린다.
“어머니, 아버지.”
나비들이 돌아본다. 어둠 저 안에서 애처롭게 보는 눈이 있다. 그러나 나오지 못한다.
-「나비 두 마리」 부분
고사리손을 양쪽으로 펼친 것처럼 떡잎 두 개로 하늘을 받고 있다. 이 싹도 며칠 지나지 않으면 자라서 줄기를 올리고 꽃을 피우겠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었다.
남옥이 고개를 들어 올리자 하늘이 보였다.
남옥에게 상처는 여전했지만, 전쟁이 지나간 자리도, 산도 들판도 하늘은 예전처럼 넓고 푸르게 펼쳐져 있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다」 부분
그때였다.
봄꽃 축제장에서 징 소리가 나며 남옥의 가슴에서 한 무리의 나비 떼가 날아올랐다.
남옥은 조카의 손을 천천히 놓았다. 나비를 따라 일어섰다. -「나비야 날아라!」 부분
차례

만나는 글
1부
싸리문 밖의 민들레/ 1951년 여름/ 낮 사람과 밤 사람/ 나비가 새겨지던 밤
2부
상처 입은 애벌레/ 등잔 밑이 어둡다/ 닭 좀 삶아 주시오/ 소달구지
3부
조카를 만나다/ 별을 세며/ 1952년 봄/ 큰오빠
4부
나비 두 마리/ 학교에 가다/ 오모야 오모/ 10월의 제사/ 응징보다 무서운 용서/
바람은 등을 밀어주고/ 하늘은 여전히 푸르다/ 나비야 날아라!
남기는 글
작가 약력

양인숙
·2002년 조선일보 동시부문, 1993년 『아동문학평론』 동화부문 등단.
·동시집 『웃긴다웃겨 애기똥풀 』『뒤둥뒤뚱 노란 신호등』 『그 너머가 궁금해』 등. 『둥실둥실 하얀기차』(한영동시집). 청소년시집 『비밀의 문』. 동화집 『담장 위의 고양이』 『나비야 날아라』 등. 그림책 『엄마 찾아가요』 『비자나무 이야기』 『지구로 온 어린왕자』. 산문집 『강자야 가다가 막히면 뒤돌아보아라!』등.
·광주전남아동문학인상, 광주문학상, 화순문학상, 불교아동문학상, 보성문학상, 24 어린이문화대상 수상.
·현재 어린왕자 선문학관 상주작가, 보성문인협회장으로 활동.
E_mail : oogram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