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문장들 1, 2권 출간/반경환
저자 반경환은 195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으며, 1988년 {한국문학} 신인상과 1989년{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반경환은 1992년 {시와 시인}을 출간한 이후, 철학예술가로서 변신을 시도하고, 그 철학예술을 토대로 하여 대한민국의 역사상, 최초로, ‘낙천주의 사상’을 정립한 바가 있다. 반경환은 철학예술의 근본문제를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가’로 삼았던 것이고, 인간의 삶의 양식과 삶의 의지, 그리고 인간의 행복한 삶의 세목들을 아주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정립한 {행복의 깊이} 1, 2, 3권이 바로 그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 그의 저서로는 {시와 시인}, {비판, 비판, 그리고 또 비판}, {행복의 깊이} 1, 2, 3권, {반경환 명시감상} 1, 2, 3, 4권 등이 있으면 현재 계간시전문지 {애지}의 주간으로서,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단 한 번의 결간도 없이 12년째 발간해 오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문장들’은 세계적인 대사상가(대작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단어 하나, 토씨 하나에도 저자의 영혼이 살아 있듯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문장’들은 우리 인간들을 살아가게 하는 비옥한 삶의 텃밭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이 비옥한 삶의 텃밭 속에서, 칸트가, 셰익스피어가, 니체가, 소포클레스가, 프로이트가, 생떽쥐베리가, 아이스퀼로스가, 데카르트가, 서머셋 모음이, 몽테뉴가, 또스뜨옙프스키가, 나폴레옹이, 맹자가, 플루타크가, 플라톤이, 노벨이, 퀴리부인이, 쇼펜하우어가, 베르그송이, 에피쿠로스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마키아벨리가, 발자크가, 호머가, 토마스 칼라일이, 바슐라르가, 다니엘 디포가, 괴테가, 마르크스가, 마틴 루터가, 움베르토 에코가, 에드거 앨런 포우가, 아리스토파네스가, 에리히 프롬이, 엘리아데가, 공자가, 헨리 입센이, 토마스 홉스가, 존 로크가, 장 자크 루소가, 가브리엘 마르께스가 탄생했고, 또한, 미래의 대사상가와 대작가들이 태어나고 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인간의 정신과 사상의 진수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문장’들을 소개해 주고 싶었다. 내가 되풀이 읽고 감탄했으며, 아직도 내 마음 속의 영혼을 울리고 있는 명문장들을 소개해줌으로써, 나는 우리 한국인들이 또다른 ‘인간--세계적인 대작가(대사상가)로 자라났으면 하는 소망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저자 서문에서
지혜사랑 산문집 반경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문장들 1, 2}, 도서출판 지혜, 4X6 양장본 각 권 값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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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예
조국애
조국은 부모나 조상보다도 더 존귀하고 더 신성하며, 또 신들이나 뜻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 더욱 가치 있는 것임을 너는 모르는가? 너는 조국에 대하여 존경하고 순종하며, 조국이 노여워 할 때에는 아버지가 노여워 할 때보다도 더 양보해야 해. 너는 조국을 설득하거나, 그 명하는 바를 무엇이나 행해야 해. 조국이 네게 견디고 참으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나 매질이나 투옥이나, 모두 참고 견디어야 해. 또 조국이 너더러 전쟁터로 가라하면 부상을 당하게 되건, 전사하게 되건 전쟁터로 가야 하고, 또 이것이 옳은 일일세. 너는 기피해서도 안 되며, 후퇴해서도 안 되며, 맡은 곳을 버리고 떠나서도 안 되네. 전쟁터에서나 법정에서나 그밖의 어디에서나 나라와 조국이 명하는 것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되네
----플라톤, {플라톤과 대화}에서
추천의 말:
이 지구 상의 모든 민족들은 언제, 어디서나 위대한 제국을 건설해 주는 영웅들을 선호하고, 또한 그들만을 위해서 거대한 바벨탑을 쌓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불가결한 전쟁을 기피하고 평화만을 사랑했던 중국이나 한국이 지불했던 혹독한 댓가를 생각해 보고, 무사태평하고 풍요로운 생존 조건에 안주했던 제3세계인들, 혹은 우리 남국인들이 지불했던 혹독한 댓가를 생각해 보라!
제국주의는 민족주의이고,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이다. 악을 악으로 갚아서도 안 되고, 부정을 부정으로 갚아서도 안 된다는 도덕군자로서의 소크라테스마저도, ‘영낙 없는 제국주의자’----왜, 전쟁마저도 불사하는 조국예찬론자이기 때문에----로서의 그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을 뿐인 것이다. 역사가는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민족을 주목하지 않는다는 헤겔의 국가숭배설도 우연이 아니고, 소련 연방이나 동구권의 몰락이 민족주의 앞으로 또다시 헤쳐 모이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국가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대외적으로는 나라 전체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막어야만 하는 방어적인 기관만도 아니고, “대내적으로는 개인들이 서로 공격하는 것을 막는” 수동적인 기관만도 아니다. 국가야 말로 위대한 제국의 꿈이 형성되고 있는 기관이며, 우리 인간 존재의 최고 목적 자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고귀하고 강한 민족, 독자적인 사상과 독자적인 이념으로 무장되어 있는 민족, 제1급의 정신에 걸맞게 모든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는 민족, 선악을 넘어서서 언제, 어디서나 자기 자신의 미덕을 긍정하고 개나 돼지와도 같은 이민족들을 지배할 수 있는 민족, 청동보다도 더욱더 빛나는 위대한 제국의 민족----, 이러한 민족들의 근본 신조는 민족은 민족 자체만을 위해서 존재해서는 안 되며, 보다 선택받고 우수한 민족이 그들을 지배하고 이끌어 가야 한다는 신념이라고 할 수가 있다.
또 조국이 너더러 전쟁터로 가라하면 부상을 당하게 되건, 전사하게 되건 전쟁터로 가야 하고, 또 이것이 옳은 일일세. 너는 기피해서도 안 되며, 후퇴해서도 안 되며, 맡은 곳을 버리고 떠나서도 안 되네. 전쟁터에서나 법정에서나 그밖의 어디에서나 나라와 조국이 명하는 것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되네.
한 국가는 그 국민들의 조국애를 먹고 살아가지만, 우리 대한민국처럼 조국애가 자라날 수 없는 곳도 없다.
아아, 참으로 큰일이고 야단이 났다.
학교
나는 {탈무드} 신학교의 면접 시험에서, “당신은 왜 이 학교에 입학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이 학교가 마음에 들어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시험관은 “만약 당신이 공부를 하고 싶다면 도서관에 가는 편이 낫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다면 학교에 입학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하고 되물었다. 그는 “학교란 위대한 사람 앞에 마주 앉는 것이다. ‘그들’이라는 살아 있는 본보기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학생은 위대한 랍비나 교사를 지켜봄으로써 배워가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마빈 토케이어 편, {탈무드}에서
추천의 말:
학교란 무엇이고, 공부란 무엇인가? 학교란 초등학교 학생에서부터 대학생에게 이르기까지 공부를 가르치는 곳이고, 공부란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학자들의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것을 말한다. 삶의 지혜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참된 이치를 말하고, 따라서 우리 인간들이 모두가 다같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적인 수단을 말하게 된다. 행복이란 모든 것이 가능하고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것을 말하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이상적인 천국이나 지상낙원을 뜻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나, 왜, 마빈 토케이어의 스승인 랍비는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다”라고말해야만 했던 것일까? 매우 역설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제 아무리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이 있다고 하더라도----더욱이 대학원 과정인 랍비 양성 신학교에서는---- 공부란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고, 따라서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만의 삶의 지혜를 창출해 내는 데 그 목적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그렇다면, 학교가 왜 필요한 것일까? 그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스승들의 인품과 생활태도를 지켜보면서, 그 스승들의 ‘삶의 향기’를 냄새 맡아보는 일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좋은 생활의 태도와 좋은 학습의 태도에서 이 세상의 삶의 지혜가 창출되고, 그 삶의 지혜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달콤한 향기가 배어 나오게된다. 이른바 최고급의 지혜인 ‘사상의 향기’인 것이다. 경외, 존경, 인자함, 친절함, 안온함, 평화, 행복 등의 감정이 ‘사상의 향기’이며 ‘천국의 향기’인 것이다. 스승은 ‘사상가 중의 사상가’이며, 자기 자신만의 사상을 창출해 내기 위하여 수많은 고통의 지옥훈련과정을 거쳐 온 문화적 영웅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큰 스승의 말 한 마디와 자그만 행동에도 사상의 향기가 배어 있고, 우리는 그 사상의 향기를 냄새 맡을 수 있는 가장 예민하고 섬세한 후각을 지니지 않은 안 된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다”, “스승이라는 살아 있는 본보기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오오, 스승이여, 스승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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