펼칠까, 잠의 엄브렐러 -최현선 시집
(상상인 시인선 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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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선 시인의 시를 읽으면 경쾌함이 느껴진다. 그것은 발랄한 언어로 만들어지는 싱싱한 이미지와 무겁지 않은 말의 리듬감 때문이다. 이런 경쾌함으로 그의 시들은 우리 삶의 여러 장면들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 경쾌함 속에는 비워진 무거움이 들어 있다. 우리가 사는 동안 느끼는 억압과 상실 그리고 그런 것들로 인한 슬픔이 경쾌한 시어들 속에 깊이 배어 있다. 언어를 통해 우리 삶의 진실에 다가서려는 결코 가볍지 않은 성찰이 최현선 시들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닌가 한다. 무게를 벗어버린 말의 힘이 말의 억압을 뚫고, 그 말로 길들어진 우리의 삶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길임을 그의 시들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구름을 바라보았다
바라는 비는 내리지 않고
구름을 바라보는 습관이 남았다
잠에서 깨면
습관적으로 들고나온 우산을 폈다
내가 모르는 언어들이 툭툭 떨어졌다
빗방울처럼
2023년 3월
최현선
시집 속의 시
흘림
흘림은 징후적이라서
흘림은 따뜻한 오해라서
직사각형 직원 회의보다
점심을 먹고 나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라서
너는 자꾸 너를 흘리는구나
꿰맨 자국처럼 조마조마하고
야단을 치다가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게 만드는 기술이라서
오늘은 너에게 자꾸 눈길이 가고
못마땅하면서도 어느새 어깨에 손이 올라가 있고
그러므로 흘림은 도무지 오해
내 어깨 위로 흘러내린
네 검은 머리카락처럼
끝까지 자라는 징후
F형 종족의 저녁
그의 성질은 ‘문다’입니다
사정거리 안에 먹이가 들어오면 한 방에 물어버리는 그의 혈액형은 플라스틱 f형, 주로 하체에 흥분합니다
단단한 턱뼈를 가진 입의 종족으로 진화하기 위해
신체의 다른 부분을 퇴화시킨 그들에게
근육질, 어떤 단백질도 물리는 순간 핏기를 잃고 축 늘어집니다 이빨 자국은 도망가도 금방 찾기 위한 표식, 저녁의 나뭇가지 그늘은 모두 물었다 놓친 몇 번의 실수로 만들어졌습니다
주로 햇살 좋을 때 사냥을 하고
사람의 단백질을 물어 증식해 왔지만
플라스틱 f형도 혈액의 노화는 이길 수 없나 봅니다
지난봄부터 먹잇감을 자꾸 떨어뜨리는 그는 이제 흘리는데 더 익숙합니다
사람의 살 냄새가 밴 집게형 옷걸이
그의 성질은 ‘뱉는다’입니다
최상위 포식자 인류에 가까워지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고 뜯는 턱의 방식으로 진화해 온 종족이
이제 뱉고 흘리는 방식으로
사람을 떠나는 중입니다
목차
1부 검고, 딱딱한 꿈
냉장고와 엄마
개기월식
죽 쑤는 여자
입술 1
바람난 가족
플라이 미 투 더 문
하얀 태양
전략 1
구름공장장 최 씨
손을 버리는 두 가지 방법
5월에 눈 녹고
지도 접는 법
타투의 서사
콜드 케이스
경제적인 연애
모자의 안과 나의 바깥이 만나면
청바지
늑대
2부 놀러 와, 입장료 대신 노크
나비들 1
너무 말랑말랑한 엄마
논리적인 방
시계
엄브렐러
오래된 습관
소주병 따는 법
아인슈타인 오토바이
바람은 어디서
녹는 국화
번창하는 사회
지퍼
꿈 1
착한 우리 사장님
한밤의 데이트
스타킹 골목
생물학습
9160
바늘의 생활
나비들 2
3부 더, 검은 꿈
미완료
꿈 2
슬리퍼 같은 저녁
쌍문동 봄바람
포유류의 습성
겨울연가
해적들에게
방방 1
말과 말
구름의 이력서
플라스틱 요람
볼 수 없는 새
박쥐
시소의 깊이
평화세탁소
입술 2
일인칭
우리 그렇게 해요
전략 2
비 그칠 때까지만 머물겠습니다
해설 _ 말을 벗어나는 두 가지 말의 방식
저자 약력
2019년 『발견』 등단
시집 『펼칠까, 잠의 엄브렐러』
인천 시인협회 회원
해시 문학회 동인
선경 문학상 운영위원
gustjs2155@daum.net
펼칠까, 잠의 엄브렐러
상상인 시인선 031 | 2023년 3월 15일 발간 | 정가 10,000원
규격 128*205 | 156쪽 | ISBN 979-11-91085-88-4(03810)
도서출판 상상인 | (06621)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 74길 29, 9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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