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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물벌레의 날갯짓으로 점을 치는 그는 사랑 수집가이다. 그는 어둠의 발소리로 당신의 호흡을 복제하고 당신의 눈에 담긴 슬픔을 풀어 시를 그린다. 그에게 닿으면 길들여지지 않는 사랑은 없다. 사랑은 늘 벚꽃 눈빛으로 핀다. 그의 붉은 발자국을 따라가면 거꾸로 가는 시간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태양과 대작하는 법을 알게 되고 새로운 사랑의 체위를 꿈꾸고 스마트한 사피엔스가 된다. 그가 그린 한 편의 시를 품고 계절을 견디는 나는 사랑 몽상가. - 김미희(시인, 달라스)
이 시집 속 시편들이 우리를 파격적이며 경이로운 세계로 단숨에 견인한다. 그리하여, 한번 숨을 멈추고 그대로 빨려들 수밖에 없다. 환타지, 매트릭스 속 그림자들이 바로 우리 자신의 비애이며, 무한 알고리즘 속 우리의 실존과 진실이 제거된 채 홀로그램처럼 홀로이 발견된다. “너는 특정인, 나는 궁극에 홀로인 자/너는 나의 합성 조합들” (「딥페이크 연애」 중) 그 형형한 슬픔과 통증이 전이된다. 또한 시집 곳곳에서 자유자재 상상력에 매료되고야 만다. - 신지혜(시인, 뉴욕)
바람개비는 바람을 이겨야 한 생을 살 듯, 사과는 사과꽃이라는 상상이 사라져야 붉은 사과가 되듯, 문정영 시인의 시는 크레타 섬처럼 독특하다.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가 산투루를 치듯 행마다 잔잔한 정열이 흘러넘친다. - 정국희(시인, LA)
문정영의 시는 대상과의 치열한 갈등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그것이 극한의 고통으로 치닫지 않는 것은 그의 화법이 섬세한 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왕자’의 외로움이 단순함에 머물지 않고 무한의 파장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시집 전체의 분위기가 그렇지만 ‘블루라이트’를 보면 특히 그렇다. - 한혜영(시인, 플로리다)
저자
문정영
전남 장흥 출생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97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1998년) 『낯선 금요일』(2004년)
『잉크』(2009년) 『그만큼』(2014년) 『꽃들의 이별법』(2018년)
『두 번째 농담』(2021년)
계간 『시산맥』 발행인
동주문학상 대표, 지리산문학상 공동 대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기금 3회 수여
시인의 말
4차 5차 산업혁명에 우리는 AI와 어떻게 공존해야 할까?
그때에 사랑, 이별, 고통은 어떻게 변할까?
다음 여행은 지구의 기후와 환경에 대한 것들이다.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집의 고정관념에서 조금은 벗어나고자 했다.
해설 대신 시산맥 회원들의 추천글을 다수 게재하였다.
2021년 여름, 문정영
목차
1부
넷플릭스 _ 018
아수라 _ 020
달, 모자 _ 022
두 번째 농담 _ 024
모과, 천천히 씹는 신음 _ 026
블랙 4분 33초 _ 028
포스트 코로나 _ 030
딥페이크 연애 _ 032
숨그네 _ 034
블루라이트 _ 036
2부
페이스오프 _ 041
空의, _ 042
안드로이드 사랑 _ 044
그림자놀이 _ 046
주름들 _ 048
저격수 _ 050
7과 1/2 _ 052
독작 _ 054
3D 프린트 _ 056
그리고 사물인터넷 _ 058
3부
버킷리스트 _ 062
페미니스트 _ 064
벤자민, 거꾸로 가는 시간이라는 버튼 _ 066
타로 _ 068
대의 _ 070
가시 _ 072
그리고 사물 인터넷 2 _ 074
빅데이터 _ 076
수집가 _ 078
그린 마스크 _ 080
4부
활*주*로 _ 085
알고리즘, 이별 _ 086
증후가 없는 증후군 _ 088
뉴 프레퍼 _ 090
케렌시아 _ 092
그리스인 조르바 _ 094
바닥들 _ 096
레이어드 홈 _ 098
50가지 그림자 _ 100
지금 스며드는 짙은 향기 _ 102
■ 문정영 여섯 번째 시집 『두 번째 농담』을 읽고 _ 105
대표시
넷플릭스
꽃을 꽃으로만 보던 절기가 지났다
계절이 꽃보다 더 선명하게 붉었다
그때 당신은 열리는 시기를 놓치고,
나는 떨어지는 얼굴을 놓쳤다
되돌려볼 수 있는 사랑은 흔한 인형 같아서
멀어진 뒤에는 새로운 채널에 가입해야 했다
언제든 볼 수 있는 당신은 귀하지 않았다
공유했던 두근거림이 채널 뒤의 풍경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캄캄한 시간을 스크린에 띄우고
당신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지우기로 했다
사랑을 자막처럼 읽는 시절이 왔다
눈에 잡히지 않은 오래전 사람처럼 자꾸 시간을 겉돌았다
나를 의자에 앉혀두고
당신은 생각에서 벗어난 생각을 보고 있었다
느슨해진 목소리가 사랑을 끝내고 있었다
툭 툭 우리는 같은 의자에서 서로 다른 장면을
몸 밖으로 밀어내는 중이었다
아수라
거위로 다시 왔다
가볍지 않은 흰 날개, 짧고 두꺼운 부리로 울던 나는
세 개의 무서운 얼굴은 가문비 숲에 숨겨 두었고, 여섯 개의
긴 팔은 은사시나무가 되었다
나로 살려 할수록 뒤뚱거렸다
어느 날부터 수면 아래가 안락해졌다
가라앉는 나를 향한 수없는 발짓에
늪에서 피는 꽃은 지고 말았어
누구도 나를 아수라 부르지 않았고
더는 숨을 멈출 수 없을 때 아득히 저무는 꽃
부르르 떨리는 이름으로 태어나
무거운 의문이 날개를 달았을까
내 몸으로는 하루하루를 날아오르지 못했다
뜨거워질 만큼 부풀거나 무거워진 만큼 가라앉아
더는 지상에서 불러낼 이름은 없었다
소리구멍 다 열고 날마다 거위 울음으로 나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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