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입술이 없는 심장의 소리』가 시작시인선 0260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첫 시집 『틈』(지혜출판사)에서 육체와 영혼 사이에 생긴 균열을 시적 상상력을 통해 봉합하는 이른바 ‘틈의 시학’을 시적 지향점으로 삼았다. 이번 시집은 생명의 순환 과정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겪어야 할 상처와 그 흔적을 직시하는 데 주력한다. 해설을 쓴 오홍진 문학평론가는 “내 안의 흔적을 바탕으로 타자로 나아가는 길은 이렇게 윤수하가 추구하는 시 쓰기의 길이 된다. 그는 타자를 통해 수없이 많은 ‘나’가 존재하는 세계로 돌아오려고 한다.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타자, 혹은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나’가 나타나는 지점에서 그의 시는 비로소 탄생하는 것이다.”라고 평했다. 윤수하의 시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타자를 ‘나’와 동등한 존재로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타자의 상처와 그 흔적을 껴안을 때 비로소 타인이 새겨놓고 간 내면의 흔적들을 ‘나’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표4를 쓴 문태준 시인은 “윤수하 시인의 시편들은 허물어지고 부서진 것의 흉터와 눈물을 바라보고 쓰다듬는다. 쇠잔하고 위태로운 것에 눈길을 주고 구호한다.”라고 평했다. ‘입술이 없는 심장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인의 시적 태도는 아물지 않은 상처가 벌어지면서 생긴 생의 흔적을 위로한다. “사람은 자신의 흔적으로 산다”라고 시인의 말에서 말했듯이, 그의 시는 생生의 불가해한 흔적들 앞에 서서 진실과 마주하고자 온몸으로 떨고 있다.
❚추천사❚
무엇을 잠재우기 위한, 누구를 재우기 위한 자장가일까? 윤수하의 ‘자장가’는 “가까운 미래에 내 몸이 내 것이 아닐 때”를 위한 자장가이다. 아니다. 그 가까운 미래가 아니라 “내 몸이 내 몸일 때” 지금 여기의 나를 재우기 위한 자장가이다. 아니다. 그 모두를 위한 것이다. 가까운 미래 내가 죽음으로 이 지상에 흩어져 버릴 것을 떠올리면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자유로울 자 아무도 없다. 그 공포를 잠재우는 윤수하의 자장가는 남다르다. 그것은 죽음과 삶에 대한 독특한 인식에서 오는데, “내 몸이 내 것이 아닐 때” 나는 아이의 뺨을 스치는 바람이 될 것이고 물결이 될 것이고, 나뭇잎이 되어 옷자락에 묻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도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형체를 잃고 흩어진 몸은/ 우주 어딘가 뿌리를 내려/ 새로운 몸을 이루고 산다”고 한다. 소멸이 아니라 자아의 확산으로 영원 속에 편입하는 것으로 죽음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을 또한 “뜨거운 사랑의 시작”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에 바탕을 둔 그의 시는 긍정과 연민의 따스한 시선으로 직조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의 시는 찰나적 삶과 영원을 이어주는 인식의 통로이며 번뇌와 혼동을 재우는 자장가이다.
―복효근(시인)
윤수하 시인의 시편들은 허물어지고 부서진 것의 흉터와 눈물을 바라보고 쓰다듬는다. 쇠잔하고 위태로운 것에 눈길을 주고 구호한다. 그뿐만 아니라, 예전의 풋풋하고 활기가 있는 상태로 되돌리는, 복원하는 힘을 보여 준다. 떠나왔던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인도하는, 풍성한 상태로 회복시켜 주는 이 상상력은 자애의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일 테다. 너그럽고 넉넉한 마음 씀씀이야말로 윤수하 시인의 시가 갖고 있는 첫 번째 미덕이다.
―문태준(시인)
❚저자 약력❚
윤 수 하
서울 출생.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전북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음.
시집 『틈』(세종도서 문학나눔),
저서 『이상의 시, 예술매체를 노닐다』 출간.
현재 전북대학교 강사.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자장가 13
씨앗 14
흔적 16
가면의 힘 17
허물어지다 18
무심코 20
떠도는 피 21
자전거 22
숲 옆 길갓집 24
통로 26
마음 28
잎 29
골목 30
목숨 31
최면술사 32
제2부
욕망은 가시가 있다 39
흔적은 기억해 40
마이미스트 42
묵은 헤비메탈을 들으며 45
내 곁에서 46
슬픔은 깃털이 있다 48
벽 안의 물고기 50
체취 52
안과 밖 54
반성 56
사물 58
몸속의 거미 60
저녁 바람에 젖어 62
천국보다 낯선 64
사금파리 66
제3부
물들다 69
떠돌다 70
그 여자 71
해 질 녘의 대화 72
세기 후라이드 볼트 74
미각의 생生 76
생生 78
어느 날, 문득 79
저 먼 그곳 80
재회 81
낙엽 82
책 83
최면의 세상 84
종점 86
그늘을 품은 꽃 88
제4부
무게 91
나 92
거울 93
모서리 94
잠 96
길 건너 이발소 97
간단한 식사를 위한 간편한 레시피 98
멍게 100
불안의 유희 101
추억 102
비 오는 첫눈집 104
틀 106
양식 108
B의 화실 109
해설
오홍진 내 마음을 가로지르는 타자의 목소리—110
❚시인의 말❚
시인의 말
집으로 가는 길은 힘겨웠다
끝없이 긴 오르막 골목 담벼락에
연필로 금을 그으며 걸었다
선이 끝날 즈음
연필은 뭉툭해졌다
날마다 새로운 선이 담벼락에 새겨졌다
나는 선에게 애틋함을 느꼈다
선을 그으며 외롭지 않고 지치지 않았다
선은 때로는 반짝이는 불빛이 되어
어둠 속의 보이지 않는 길을 일러준다
생의 궤적,
사람은 자신의 흔적으로 산다
❚시집 속의 시 한 편❚
마이미스트
이른 새벽 마당으로
새가 날아들었어.
어린 나는 신비한 새의 날갯짓을 훔쳐보았어.
행여 날아갈까 가슴 조이며
새의 등은 코발트블루로 빛났어.
어두운 수풀 그늘에서도
눈에 띄는 새의 날개는
숨길 수 없는 마음 같았지.
누구를 향하는 마음이 그토록
환하고 선명했을까.
엄마는 집을 나갔어.
구겨진 편지처럼 버려져
하염없이 배가 고팠어.
책상 밑에 숨어
쥐처럼 허겁지겁
땅콩버터를 퍼먹었어.
달콤하고 느글거리는 식감이
배 속에 눌어붙을까 걱정됐지.
밥과 영혼은 정비례해.
수없는 다리를 흔드는 그리마가
온몸에 달라붙어서
몸뚱이가 타버리지 않는 이상
마음을 먹어치울 것 같았지.
인생은 가시밭길이고
사랑도 다 거짓말이야.
피딱지가 붙은 입술
허공에 걸린 거울 속에 붙은
정교하게 쪼개진 마음.
몸은 사랑을 기억하지만
마음은 밥에 가 있어.
밥풀에 엉겨 붙은 심장이 말해.
입술이 없는 심장의 소리는
아무도 들을 수 없어.
몸을 웅크린 채로
시간이 흘러가도록 버려두었어.
나비의 수명은 한 계절이야.
기면서 한 계절
매달려서 한 계절
흉측한 몸을 비우고 바꿔
겨우 보름을 날아
그래서 나비의 날갯짓은
소리를 뱉지 않고도
시간을 전달하는
꼭 그만큼이야.
나는 입술에 지퍼를 달았어.
말은 침묵 속에 갇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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