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시인선 0171 이향지 시집 햇살 통조림
햇살 통조림/ 이향지/ (주)천년의시작/ B6(신사륙판)/ 149쪽
시작시인선(세트 0171)/ 2014년 10월 2일 발간/ 정가 9,000원
ISBN 978-89-6021-220-6 04810/ 바코드 9788960212206 04810
❚신간 소개❚
(주)천년의시작에서 이향지 시인의 신작 시집 <햇살 통조림>이 2014년 10월 2일 발간되었다. 이향지 시인은 1942년 통영 출생이며, 부산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89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괄호 속의 귀뚜라미> <구절리 바람 소리>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 <내 눈앞의 전선>이 있고, 산문집으로 <산아, 산아>, 연구서로 <북한 쪽 백두대간, 지도 위에서 걷는다>가 있다. 2003년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자연에서 삶과 죽음의 섭리를 길어 올리는 이향지 시인의 목소리는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싱싱하고 탄력이 있다. “천연의 꿀과 방부제를 한 몸에 지닌/ 열매”처럼 그 숨결은 향기롭고, “발효와 부패를 제대로 거쳐 온 퇴비”처럼 그 냄새는 고소하다(「햇살 통조림」). 그렇게 삼동을 견딘 “뜨거운 씨앗”(「삼동(三冬)이 깊다」)이 싹을 틔우는 순간들이 이 햇살 통조림에는 가득 쟁여져 있다. 오늘도 시인은 텃밭에서 흙이 묻은 채 돌아오지만 굳이 흙을 씻지는 않는다. 그 흙 알갱이들 속에 우리를 살릴 생명의 원형질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명의 감옥에 갇혀 시들어 가는 영혼들이여, 그녀가 건네는 햇살 통조림을 하나씩 열어서 맛보시라. “스스로 살 수도, 살릴 수도 없는 물건들의 길”(「물건들의 길」)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것들”(「무늬」)의 향연과 투쟁을 함께 만날 수 있을 것이니.
❚추천사❚
여기 햇살과 바람을 모아 빚어낸 시들이 탱글탱글하게 잘 여물었다. 자연에서 삶과 죽음의 섭리를 길어 올리는 시인의 목소리는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싱싱하고 탄력이 있다. “천연의 꿀과 방부제를 한 몸에 지닌/ 열매”처럼 그 숨결은 향기롭고, “발효와 부패를 제대로 거쳐 온 퇴비”처럼 그 냄새는 고소하다(「햇살 통조림」). 그렇게 삼동을 견딘 “뜨거운 씨앗”(「삼동(三冬)이 깊다」)이 싹을 틔우는 순간들이 이 햇살 통조림에는 가득 쟁여져 있다. 오늘도 시인은 텃밭에서 흙이 묻은 채 돌아오지만 굳이 흙을 씻지는 않는다. 그 흙 알갱이들 속에 우리를 살릴 생명의 원형질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명의 감옥에 갇혀 시들어 가는 영혼들이여, 그녀가 건네는 햇살 통조림을 하나씩 열어서 맛보시라. “스스로 살 수도, 살릴 수도 없는 물건들의 길”(「물건들의 길」)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것들”(「무늬」)의 향연과 투쟁을 함께 만날 수 있을 것이니.
―나희덕(시인, 조선대학교 교수)
이 시집의 초입에 이런 현수막 하나 붙어 있어도 좋겠다. 초록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Green World). 식물적 상상력이라고 부르면 우리는 즉각 수동태, 정물화, 정적, 고전주의, 수난으로서의 가족사…… 같은 것을 떠올린다. 이 시집의 식물성은 그런 것이 아니다. 능동태, 변신담, 웅성거림, 사실주의, 대긍정의 자연사…… 같은 것이 여기에는 있다. 마른 화분 속의 흙이 “제 몸의 물기를 모두 짜서 작은 식물에게 먹”(「흙의 건축 2」)인다 했으니 능동태로 전환된 역량이요, 버려진 포도 알이 “달디단” 빙과(「빙과(氷果)」)로, 사과가 “햇살 통조림”(「햇살 통조림」)으로 몸을 바꾸었으니 변신 이야기이며, “잎 많은 것들은 말도 많아”(「몇 겹의 끈」)서 시집 전체가 유쾌한 소음으로 가득 차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찬 방앗간인 내 심장을 자연이 “재로 돌리는 방아”(「심장에 바친다」)로 바꿀 준비를 하고 있으니 냉정한 사실의 세계이기도 하며, 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후의 내 몸이 “개미 땅거미 배추벌레 노래기 짚신벌레” “다 받아”(「몸으로 산다는 것은」) 줄 것임을 알고 있으니 대긍정의 역사다. 나는 삶과 죽음이 이처럼 퀸사이즈 침대에서 함께 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사는 시의 집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쓸쓸하지만 상쾌하고 일상적이지만 장엄하다. 흥, 시인은 이런 멋진 집을 짓느라 독자를 오래 기다리게 했구나.
―권혁웅(시인, 문학평론가, 한양여대 교수)
❚저자 약력❚
이향지
1942년 통영 출생. 부산대학교 졸업.
1989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괄호 속의 귀뚜라미> <구절리 바람 소리>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 <내 눈앞의 전선>이 있고, 산문집으로 <산아, 산아>, 연구서로 <북한 쪽 백두대간, 지도 위에서 걷는다>가 있음.
2003년 현대시작품상 수상.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구슬이 구슬을 ― 13
꽃에서 달까지 ― 14
파꽃북채 ― 16
성한 마룻장을 세어 보다 ― 18
나무 한 그루의 경우 ― 20
엄동 뒤에 오는 것 ― 22
풀눈꽃눈 뜨니 ― 24
이 연장이 사는 법 ― 25
잡초 ― 26
범생이 ― 28
고체인가 ― 30
애플 스토리 ― 32
타조 ― 34
땅심 ― 36
아무도 아프지 않다 ― 38
풀단 ― 40
제2부
눈물 ― 43
액체의 시간 ― 44
뭉클한 저녁 ― 46
풀과 싸우다 ― 48
풍찬노숙 ― 49
흙의 건축 1 ― 50
흙의 건축 2 ― 51
삼동(三冬)이 깊다 ― 52
열매는 왜 뜰까 ― 54
빙과(氷果) ― 56
또 한 나무가 땅 짚고 ― 58
변신 ― 59
몇 겹의 끈 ― 60
엉성한 구석 ― 62
안심 ― 64
긍정 ― 66
띠포리로 가겠다 ― 68
제3부
진흙 속으로 깊이 ― 73
햇살 통조림 ― 74
침향(沈香) ― 76
사람은 어떻게 구름이 되는가 ― 78
빛 한 줄기 ― 80
배웅 ― 82
오늘은 아니야 ― 84
심장에 바친다 ― 86
초승달 한 켤레 ― 88
빗방울 자리 ― 90
그런데, 무엇이 ― 92
방귀에도 껍질이 있다 ― 94
내가 내 아버지의 전부였을 때, 나는 내 아이의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 96
아비 ― 97
환(幻) ― 98
제4부
배고픈 벌이 ― 103
몸으로 산다는 것은 ― 104
생명 ― 105
무늬 ― 106
자연 ― 107
소쿠리만 한 초록빛 ― 108
끝의 소리 ― 110
새 풀이 돋을 때까지―참회, 2010-2011 ― 112
이 봄은 봄도 부끄러워 ― 114
라일락을 심을까 ― 116
어디에 놓을까 ― 118
겨울이 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 119
글자들 ― 120
알므로, 강이다 ― 122
바다가 되기 전에 ― 124
물건들의 길 ― 126
비탈을 부탁해 ― 128
해설
유성호 더 깊은 진흙을 마셔야 닿을 수 있는 소리―이향지의 시 세계 ― 129
❚시집 속의 시 두 편❚
진흙 속으로 깊이
꽃 올린 뒤에는 구멍만 숭숭해지는 연뿌리
빈 길 많은 몸이다
뿌리 끝의 숨을 모아 꽃의 중심까지 꽃과 열매를 밀어 올린 흔적
마디에서 마디까지가 꽃 한 송이씩이다
한 마디 분질러 칼로 잘라 보면 자른 숫자만큼의 바퀴가 굴러 나온다
꽃으로 왔던 사람들 열매로 익어서 떠나간 흔적
꽃잎을 뭉개고, 연실은 익어 북소리 터트렸지만, 축 잃은 바퀴들은 제 열매의 모습을 구멍에 아로새겼을 뿐이다
구멍은 뚫렸으나 하늘을 울리지 못한 악기들
밤마다 꽃잎을 닫고 더 깊은 진흙을 마셔야 닿을 수 있는 소리가 있다
이 연장이 사는 법
이 연장을 조금 안다
흙을 판다
흙을 덮는다
나는 파지 팔지 않는다
나는 흙이 조금 묻어서 돌아온다
나는 굳이 흙을 씻지 않는다
물이 마르면 흙은 알아서 떨어져 간다
흙을 파고 덮는 짧은 사이에 씨앗을 넣었다
흙은 알아서 길게 먹이고 재우고 키워 준다
씨앗은 알아서 일찍 죽거나 서리 내릴 때까지 산다
이 연장은 죽은 것을 캐거나 산 것을 옮길 때도 사용된다
흙은 알아서 가슴을 뜯어 주거나 엉덩이를 들어 준다
흙은 알아서 남몰래 삭이거나 뼈를 남겨 준다
흙이 문을 닫고 겨울로 떠나면 이 연장도 알아서 쉰다
이 연장의 끝은 놀고 있을 때 빛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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