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김연종 시집 (지혜사랑 시인인.58)
의사 시인 김연종 시집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 출간
김연종 시인은 1962년 광주에서 태어났고,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2004년 {문학과 경계}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극락강역}이 있고, 제3회 ‘의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의정부시 ‘김연종 내과’ 원장으로 재직중이다. 첫 번째 시집인 {극락강역}이 전통적인 서정의 감수성을 통하여 우리 인간들의 삶의 애환을 노래해왔다면, 두 번째 시집인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는 의사와 시인의 경계에서, 히포크라테스와 반히포크라테스의 경계에서, 아니,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경계에서, ‘시인--의사’로서의 절규를 노래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누가 올무에 걸린 들쥐이고, 누가 발광하는 고양이인가? 누가 의사이고, 누가 시인인가? 누가 정상이라고 말하고, 누가 정상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누가 언어를 소유하고, 누가 자본의 문화의 정점에서 가장 세련된 검은 수사학을 구사하고 있는가? 김연종 시인의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는 의사로서의 금기를 깨뜨린 고해성사의 시이며, 그의 양심선언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여기, 우리 시단에 ‘이상한 시들’이 당도했다. 우리의 시가 그 외연을 지루하게 확장 중일 때, 김연종의 시들은 그 최전선에서 부르르, 떨고 있다.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Homo medicus"를 창조해 냈다. 임상의 기록들로 가득한 이 시편들은 우리가 이제껏 보아온 서정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막 우리에게 당도한 이 시집을, 한 의사의 임상 기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권태와 불안이 서로 중무장한 채로 각자의 참호에서 두리번거릴 때, 김연종은 그들을 소환한다. 권태는 불안에게 잡아먹히고 불안은 잡아먹은 권태를 다시 토해낸다. 錯亂이자 倒錯이며 궁극적으로 발작이다. 이 살벌한 육박전이 김연종 시의 현장이다. “두개골부터 내장까지 썩지 않은 삶이 어디 있으랴”라고 시인이 말할 때, 우리는 우리의 신체가 썩어가는 이유를 알아야한다.
시인이 진단하는 우리 신체의 부패원인은 “에고 기능 장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에고는 안녕합니까? 당신의 에고는 정녕 당신 것입니까? 우리는 정말 우리입니까? 김연종의 시는 우리가 간신히 찾아낸 해답들을 통째로 뭉개버리면서 거대한 괄호만 남겨 놓는다. 괄호의 앞, 뒤, 왼쪽과 오른쪽, 위, 아래가 모두 공백이다. “치료하면 생존확률 0.01% 방치하면 99.9%의 치사율 사이”가 시인이 제시하는 우리 삶의 공백이다. “Homo medicus” 시인 김연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절박한 그 경고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답을 내어놓아야 하는가. 시인이 필사적으로 그려낸 그 공백에 합당한 언어를 우리가 부여해줄 때 비로소, 우리 시는 한 세계를 개척해낸 새로운 시인 한 명을 온당하게 갖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시인의 고투와 피범벅 육박전의 현장에 당신들을 초대한다. 이제 우리 시도 간신히 ‘의학시’라고 할 만한 시집 한 권을 얻었다.
---박진성 시인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아니, 시를 쓰는 호모 메디쿠스란 어떤 존재인가.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에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자다. 그리고 그 의무에 질문하기 위해 치열하게 저 자신과 대면하는 고통을 참아내는 자다. 호모 메디쿠스는 안다. ‘병든 잎’을 살리기 위해서 스스로가 흉흉해질지언정, 나뭇잎이 한 때 품고 있던 초록빛의 기운만은 포기하지 말아야 함을.
그리고 나는 단 한번도, 이 시집의 해설에서 시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이것은 명백히 의도적인 것이다. 시인이여, 나는 당신을 끝까지 ‘시인’이라 부를 것이다. 당신의 고통을 지지할 것이다. 그러니 시인 호모 메디쿠스, 그대의 명멸이 두려울지라도 끝까지, 당신은 이 아픔을 오롯이 아파내기를.
---양경언 문학평론가
“얼음 심장과 술에 찌든 간으로/ 그는 오늘도 현장을 재촉한다/ 블루칼라의/ 넥타이 같은 청진기를 목에 메고/ 안경 밖의 세상을 조명한다/ 버림받은 고양이의 울음소리만/ 시멘트 바닥 같은 흉곽의 동굴에 나뒹굴고/ 핏기 없는 사람들은 저마다 입을 다물었다/ 청진기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는 그, / 얼어버린 심장과 딱딱한 폐는/ 이제 더 이상/ 그의 삶의 지폐가 아니다/ 실핏줄 같은 병력들을 모아/ 동맥의 바코드로 정리하고/ 오늘도 그는 무당처럼/ 주문을 외워댄다/ 올무에 걸린 들쥐들이/ 바르르 몸을 떤다// K가 고양이처럼 발광한다/ K가 쓰디쓴 토물을 닦고 있다/ K가 흩어진 간을 주워 담는다” ----[닥터 K를 위한 변주] 전문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의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겠노라./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 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至上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 /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선서를 마친 히포크라테스가 컴컴한 방에서 차분히 옷을 벗고 마음 놓고 발작한다 선서 때마다 발작이 도지는 그는 다시는 거짓맹세 따윈 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발작 후 수면처럼 그는 또 나른해지고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눈을 흘긴다 옷 속에 깊이 파묻혀 있던 무의식이 발작 중에 슬그머니 발목을 빠져 나와 거리의 악마와 동행한 것이라 짐작한 히포크라테스가 또 다시 히죽거린다 세상에 잠복해 있다가 갑자기 출현한 집단무의식의 신종 바이러스들이 졸고 있는 그의 내면을 일으켜 세워 의식의 자판을 두드린다 처음 선서를 시작하던 시절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조류독감, 치료제가 전무한 신종 인플루엔자, 수족이 변형된 수족구병과 만나기 위해 빙의의 컴퓨터 이 곳 저 곳을 배회하며 접신을 시도 한다 발작의 촛대를 찾지 못한 촛불들이 모니터 주위에서 깜박 거린다 발작만이 그에게 위무의 백신이요 항바이러스제요 세상에 대한 면역이다 발작은 여전히 계속되고 매일 새롭다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히스테리 발작중이다”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 전문
지혜사랑 58번 김연종 시집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 도서출판 지혜, 4X6 양장본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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