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내가 먼저 말할게 - 강일규 시집
(상상인 시선 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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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규의 시적 텐션tension은 특이하게도 여느 관념적 윤리의식보다 늡늡한 연민의 정서가 짙다. 그만큼 시인의 연민은 감상성을 넘어 내재적이며, 은근하면서도 독특한 윤리적인 개성을 발휘하는 정서적 촉매제와도 같다.
강일규의 섬세하고 늡늡한 정서적 너름새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편적 현실의 사랑으로 치환시켜 삶 속에 번져놓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가 사회 통념상의 구휼救恤이라고 할 때, 시혜적인 대상을 주체 밖에서 지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상의 관념적 시각을 좀 더 확장해 보면, 강일규의 시적 행보는 자신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적 불상사와 갈등의 국면을 수용하면서 구휼의 정서를 확보하고 있다. 시인은 그렇게 불민하고 불안한 시간의 곡절을 다독이고 품으면서 사랑의 여력을 세상으로 번져가는 중이다.
_유종인(시인)
시인의 말
빗소리 좋아하는 거 여전하지?
봄비 아니면 어때
가을비도 괜찮아
비의 작은 말도
같이 들을 수 있어 다행이야
애썼어
2022년 11월
강일규
시집 속의 시
시클라멘은 햇살의 온기로 꽃 하나가 피고 지면 또 다른 꽃대가 올라온다 했다 꽃이 피지 않으면 여름이라 했다
나는 물로 키우고
당신은 입김으로 키우고
물을 많이 주면 뿌리가 썩어요! 라는 핀잔에 가끔은 물을 빼 버리기도 했다
들어올 땐 싱그럽고 빠질 땐 뜨끈한 바람이 문틈을 들랑거렸다 그 바람이 꽃을 피운다 했다 그녀처럼
-「시클라멘」 부분
이월을 기다린 너는 카드로 신상을 긁고
이월 상품을 든 나는 유효기간이 다가온 상품권을 내밀었어
너의 이월과
나의 이월은 닮은 듯 달랐어
신상을 든 너의 손엔 봄바람이 불고
겨울 잠바를 든 내 손엔 찬 바람이 불었어
나는 또다시 이월 중이었어
-「이월 중」 부분
대기실에서 마주쳤던
한 남자와 한 남자가 보호자란 인연으로
눈빛이 스칠 때마다 놓친 연과 놓은 연을 위로했다
아내의 울음이
자궁 밖으로 다 빠져나가길 기다렸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고기 반 근을 샀다
-「미역국」 부분
목차
1부 나는 물로 키우고, 당신은 입김으로 키우고
불씨
세상 물정 모르고
미역국
거미의 집
정곡
칼국수
봄
여름
월요일
바닥
시클라멘
한 켤레의 구두
물론論
2부 여름 보내고 돌아서면 여름이라 했다
환생
남다른 재주
말의 경주
울림의 파장
상촌
혹,
밥심
천덕
고유번호
초경
불황
활어
약발
3부 슬픔은 건들지 않아도 슬프다
숫돌
그믐
핑계의 핑계
다행이다
토하
가시연
임종
불꽃놀이
불안불안 재계약
쉿
이월 중
어제는 클린업 타자
양말
4부 오독하면 헛웃음이 되는 문장들
복어
술래잡기
겨울 민들레
기일
애기동백
물고기의 등급
만두
우리도 사진 한 번 찍어 볼까요?
꼬리의 진화
아내의 달력
세 번째 화살
일기
립싱크
해설 _ 연민과 구휼救恤의 사랑의 시학
유종인(시인)
저자 약력
충북 영동 출생
2017년 『문예바다』 등단
2022년 전남매일 신춘문예 당선
2022년 세종시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시집 『그땐 내가 먼저 말할게』
1919i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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