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리운 것들만 더디 바래지는지 - 박위훈 시집
(상상인 시선)
[추천글]
박위훈 시인의 시를 읽으면 현실과 꿈의 길항작용으로서의 시적 형상화를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도 현실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시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심줄 같은 것이 아로새겨져 있다. “슬픔의 비기悲器”를 찾아가는 것이 그에게는 시의 다른 이름이다. 슬픔의 그릇을 채워간다는 것은 그의 시가 좀 더 구체적인 국면에서 경험과 관련된 시적 형상화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의 시에 드러난 공간을 넘어선 장소애場所愛 topophilia도 역시 슬픔의 그릇과 관련된 인물들의 서사로 형상화된다.
_ 우대식(시인)
박위훈 시인의 시에는 범박한 현실에서 길어 올린 슬프고 아름다운 결핍들이 존재한다. 탑에 돌을 쌓듯 시인은 한 줄 한 줄 간절함으로 시를 세운다. 하지만 자신의 간절함이 혹여 ‘아무거나’였을지도 모른다는, 허물의 한때일지도 모른다는 자성을 잊지 않는다. 우리는 시집 속에서 남과 북을 넘나드는 조강의 새들을, 전류리의 숭어와 오래도록 볼 수 없던 웅어와 참게들을 만나게 된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멀어진 것들, 그리움의 한때를 소환함으로써 잃어버린 가치들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시는 결핍의 순간에 찬란하게 피어나는 꽃일 것이다.
_ 서상민(시인)
[저자]
박위훈
202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문예감성] 등단.
시집 [왜 그리운 것들만 더디 바래지는지].
달詩, 반딧불이 동인.
pwhoonh@hanmail.net
[시인의 말]
시를 쓸 때만큼 갈증 난 적 또 있을까
슬픔의 비기悲器를 채워줄 한 줄 문장들
얼마나 갸륵한지
시,
길고도 짧은 만남을
[시집 속의 시 한 편]
어느 날은 아무거나였다가
층층 간절함이다
발끝을 세워 하나의 기원이 되기도 하는 탑
자발없이 틈만 보이는 허물의 한때 같다
무너지다 깨금발로 허공을 딛고 올라서는
여기가 마음속 적멸보궁이라는 건지
눈보시도 적선이라는 건지
너덜돌 몇 개 괸 소란이 바깥의 욕심 같아서
돌에게 미안했다
틈 하나 두어 소란한 침묵을 들이고 싶은데
돌을 잊고 탑의 귀마저 버리면 그냥 풍경인데
허투루 여긴 아무거나를
슬몃 괴어놓았다
낮음에 이를 때까지
[차례]
1부 젖지 않는 기억은 그림자를 앓는다
어느 날은 아무거나였다가 _ 019
별의 미장센 _ 020
어둠의 샅에 귀 하나 새겨 넣고 _ 022
난젓 _ 024
고래 해체사 _ 026
잉여인간 _ 028
모과나무 아래서 _ 030
복쌈 _ 032
허물이라는 허물 _ 034
샛강에 귀 하나 던져두고 _ 036
노숙의 별은 뉘 집 평상에 잠을 뉘일까 _ 038
그 붉음에 대하여 _ 040
조강 _ 042
2부 소란한 수화
몽골반 _ 047
백색왜성 _ 048
추락, 그 후 _ 050
마네킹 _ 052
웅어 _ 054
슬픔의 까끄라기 _ 056
남겨진 고추장독에 대한 단상 _ 058
자서의 거리 _ 060
두부 _ 062
그때, 오이지 _ 064
봄밤의 일기 _ 066
단디 해라 _ 068
붓꽃척사 _ 069
3부 아무것도 아닌 우리
도깨비바늘 _ 073
향일암 _ 074
곡두 _ 076
갯땅쇠가 천민이다 _ 078
샛길로 오는 입동 _ 080
역마살 독설 _ 082
황산도 _ 084
아무것도 아닌 우리 _ 086
소금쟁이 문장 _ 088
김장화엄 _ 090
7분의 계절 _ 092
조강 _ 094
덖다 _ 095
4부 생채기가 시간을 흔들던 때
멜젓 _ 099
골목 크로키 _ 100
한하운 시인 _ 102
사려니숲 _ 104
석류의 문장 _ 106
건너가는 홍시 _ 108
수종사 풍경 _ 109
북어 북어 _ 110
물집 _ 112
봉숭아 _ 114
아버지는 아버지인 줄 모르고 _ 115
대명포구 _ 116
평화누리길 1 _ 118
평화누리길 2 _ 120
해설 _ 슬픔의 비기悲器에 채워진 “어느 날 아무거나”의 갸륵함 _ 123
우대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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