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하나 지나가는 밤- 이은송 시집 (쳔년의 시작)
1999년 《전북도민일보》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은송 시인의 첫 시집 『웃음이 하나 지나가는 밤』이 시작시인선 0261번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자신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주저 없이 드러내며 강력한 생의 의지를 표출한다. 그의 시 쓰기 여정은 세상의 모든 존재는 아플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거쳐 궁극적으로 자신의 통증과 타자의 통증이 공명하는 부분을 발견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해설은 쓴 복효근 시인은 “이은송의 시는 통증의 기록이며 스스로 선택한 자기 부정, 역행과 소멸과 파멸의 기록이다. 아직 이르지 않은, 혹은 영원히 이르지 못할 치유와 자유와 유토피아를 위한 안간힘의 몸부림이다.”라고 평했다. 시인은 첫 시집을 통해 인간은 누구나 병을 앓고 살아간다고 노래한다. 그는 치유의 과정 또한 병을 얻게 되는 과정과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고 ‘자기 파멸’을 생의 절벽까지 밀고 나가며 끝내 ‘자기 회생’에 대한 갈망까지를 보여 준다. 극과 극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첨예하게 붙어있어 언제든 하나의 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시인의 시 세계를 지탱하는 중심 사유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주저 없이 화자를 생의 절벽에 세워두고 세상과의 교감을 이루려고 한다. 또한 존재의 보편적 속성인 ‘아픔’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타자의 통증이 나의 통증과 다르지 않음을 수용할 때 끝내 구원받을 수 있음을 믿는다. 그의 시가 단순한 아픔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생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까닭은 삶과 죽음, 아픔과 희망의 경계를 넘나드는 치열한 시어들이 우리의 덧난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 때문이다.
❚추천사❚
내가 알고 있는 그녀는 세상에 섞여 북적거리는 것은 서어해도 세상 부조리에는 둔감하지 않다. 이만큼 또는 저만큼의 거리에서 자신이 행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각으로 세상을 수용한다. 늘 깨어있고자 하며 자각하는 만큼 의식화하고자 한다.
시 또한 그렇다. 그녀는 관념의 세계에 머무는 것뿐만이 아니라 행위의 세계까지 넓고 깊게 이행한다. ‘사랑’ ‘정의’ ‘존재’ ‘꿈’ ‘경계’ ‘적요’ ‘희열’ ‘절망’ ‘설움’ ‘연민’ 등 생의 인접 언어들에서 시가 발화되지만 ‘박쥐’ ‘딱따구리’ ‘호두’ ‘잔디’ 같은 시적 대상을 만나서 ‘떡갈나무 숲’ ‘동네 빈터’ ‘느티나무 아래’ ‘숲의 언덕’ ‘나팔꽃의 목덜미’ ‘지하 단칸방’으로 공간화한다. 시들을 읽노라면 마치 “나도 몇 생이 걸려도 아련한 달의 심장으로 태어나고 싶어요”(「목련꽃 허파」)라고 하는, “왜 아픈 것들만 내 몸 같은지 모르겠어요”(「내 가난한 말들」)라고 말하는 그녀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최광임(시인)
말로 다할 수 없는 얘기를 그림도 아니고 노래도 아니고 끝까지 말로 하는 이들이 있다.
불구가 된 언어를 붙잡고 마냥 슬프게 우는 이들, 그들이 시인이다.
그래서 시는 주제와 장르를 막론하고 다 슬프다.
시가 무엇을 다루든, 시는 그 무엇 때문에 슬픈 것이 아니라 그 무엇 이전부터 슬픈 것이다.
이은송의 시에는 그 슬픔이 있다.
이은송은 무엇을 보고 들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보기 전부터 슬프고, 듣기 전부터 슬픈 사람이다.
그래서 이은송은 천생 시인이다.
―남덕현(작가)
❚저자 약력❚
이 은 송
전북 부안 출생.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석사.
1999년 《전북도민일보》, 2015년 『시와시학』에 시 당선.
《전북중앙신문》에 철학 에세이 「미로에서 철학줍기」를 3년간 연재.
전주 청소년인문학당과 인문고전아카데미를 진행.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강의.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거미 여자 13
박쥐 무릎 14
목련꽃 허파 16
이명 속 나무 한 그루 18
태아 20
반질반질한 22
호두의 페르소나 24
연두 바이러스 26
당신의 등 굽은 벽화 28
푸른 사선의 길들 30
나무 켜는 애인 32
검은 고양이 네로 34
보길도에서 36
반대의 길을 걷다 38
제2부
귀 무덤 43
빈 병의 헤게모니 44
구석 46
내 가난한 말들 48
소나무 발가락에는 방들이 살아요 50
둥근 방 52
라일락 미망 54
바람이 집을 지어요 56
당신이 뒤돌아볼 때 58
집요하다 60
돌로 된 나무 62
봄 64
나무들의 흰 뼈 66
붉은 사과나무 언덕을 지나, 나는 가네 68
제3부
사과 상자와 못 73
대장장이 74
우리는 붉은 매듭일까 76
가랑잎, 가랑잎 78
헌 옷집의 둘레길 80
쉿 82
새의 유서 84
입하立夏 86
내 귓속에는 박쥐가 살아요 88
겨울 등나무 밥상 90
포플러 한 그루 내 귓등에서 자라네 92
꽃 지는 배롱나무 94
어느 부족의 전통은 96
검은 새 98
제4부
기둥 101
초록 나물 102
프로펠러 104
익명으로, 숨어들다 106
저기, 등꽃이 피어요 108
칸나의 벼랑 110
카뮈의 저녁 112
그늘나무 한 그루쯤 114
나비 박제 116
불타는 사원 118
북 120
밀랍 인형 122
자유를 팝니다 123
가랑잎 흑백사진 124
플라타너스 지도 126
돋아난다, 연두 128
면경面鏡 130
별똥별 쏟아지는 캄캄한 밤 132
해설
복효근 아픔을 통과하는 치유와 재생의 시학 133
❚시인의 말❚
시인의 말
나지막한 언덕에서, 나는 오래 쉬고 있다
너무 애쓰며 살다 간 어머니처럼
멈추어 쉬는 지금
내 몸에서 나비의 액체가 한없이 흘러나왔다
끈적한 나비 액체들은 제각각 몸들을 비척이더니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
자꾸자꾸 멀리 날아갔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나는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만장의 나비 떼
내 몸이 나비의 방이었던가
이제야 조금 가벼워졌다
내 시는 달콤하고도
슬픈 말들의 이마
그 먼 나날들을 아프게 날아와
내게 닿은 나비의 기척들이다
❚시집 속의 시 한 편❚
별똥별 쏟아지는 캄캄한 밤
고통이 하나 지나가고 웃음이 하나 지나가는 밤
이제 나는 아름다운 서정시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내 옆구리 통증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일이어서
단지 오늘처럼 별똥별 쏟아지는 캄캄한 밤을 기다렸지
그리고 꽉 쥐고 있던 내 손을 활짝 펴기로 했어
꽃처럼 펼치는 그 순간에
내 손바닥에 흥건해진 별의 피를 맛보는 거야
나는 낯선 지도를 찾느라 길처럼 이어진
북두칠성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왔으니까
그래서 나의 비밀은 별을 꼭 쥐는 일
더욱 깊고 아프게
매 순간의 고통을 디디며 별에 닿으리라는 꿈
내 손금이 캄캄한 별의 손바닥까지 닿은 밤이면
별은 이렇게 내 가슴 위로 별똥별로 쏟아진다고 믿고 있어
춥고 어두워서
더욱 밝은 아픈 별
내던져진 나의 상처 속으로 와 촘촘히 박히리라고
서정시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만
[ⓒ LA코리아(www.lakorea.net),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